오피니언칼럼
양과 바늘과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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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7.10.12   게재일 201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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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현동 정동유(1744~1808) 선생이 1805~1806년 어간(於間)에 지은 `주영편(晝永編)`에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조선의 졸렬한 세 가지 풍속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조선에는 바늘과 양, 그리고 수레가 없어서 옹색하다”는 것이다. 소, 말, 개, 돼지, 닭과 함께 양은 육축(六畜) 가운데 하나다. 대륙에서는 일찍부터 소와 더불어 희생 제물로 널리 보급된 가축이 양이다. 현동 선생은 그런 양이 조선에 없는 것을 한탄한 것이다.

양은 조선의 자연지리적인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바늘과 수레의 부재는 뜻밖이다. 불과 200여 년 전 조선에 바늘과 수레가 없었다는 사실이 이해 가능한지 궁금하다. 순조 어간에 유씨 부인이 썼다고 알려진 `조침문`에서 사태의 본질을 짐작할 수 있다. 청나라에서 가져온 바늘을 27년이나 쓰다가 문득 부러뜨린 안타까운 심사를 담은 글이 `조침문`이다.

“연전에 우리 시삼촌께옵서 동지상사 낙점을 무르와 연경을 다녀오신 후에, 바늘 여러 쌈을 주시거늘, 친정과 원근일가에 보내고, 비복들도 쌈쌈이 낱낱이 나눠주고, 그 중에 너를 택하여 손에 익히고 익히어 지금까지 해포 되었더니, 슬프다. 연분이 비상하여 너희를 무수히 잃고 부러뜨렸으되, 오직 너 하나를 영구히 보전하니, 비록 무심한 물건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치 아니하리오.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

`조침문`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세간(世間)의 필수품인 바늘 하나를 조선에서 만들지 못했다는 대목이다. 반가(班家)의 아낙 유씨는 시삼촌 덕에 바늘을 얻어 친정과 지인들에게 나눠주었다지만, 일반 백성들은 어찌 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동지섣달 설한풍을 견뎌낼 든든한 옷차림의 출발이 촘촘한 바늘땀이었을 것은 자명한 이치. 장구한 세월 조선의 민초들은 긴긴 겨울날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하는 우울한 소회가 찾아든다.

일찍이 연암 박지원(1737~1805) 선생은 “조선의 백성이 가난하고 굶주리는 까닭은 선비 탓”이라고 일갈했다 한다. 수레 같은 초보적인 운송수단마저 19세기 초 조선에 없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기원전 20세기 무렵 `안드로노보`인이 발명한 전쟁용 전차(戰車)가 역사기록에 등장한 것이 기원전 1274년 람세스 2세의 이집트와 철기문명의 선두주자 히타이트가 맞붙은 `카데시 전투`였다. 수레 없는 춘추전국시대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노릇이다.

조선의 허다한 선비와 식자들이 독파했을 `논어`와 `맹자`, `도덕경`과 `장자`에서 수레를 찾는 것은 다반사(茶飯事)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들은 독서행위 자체에 함몰되었을 뿐, 경세제민에는 태무심했다. 그저 과거에 응시하여 환로(宦路)에 나아가 가문의 영광을 현창하는데 급급했을 따름이다. 개인의 영달과 집안의 광영을 위해 일로매진한 갸륵한 뜻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 탓에 민초들이 겪어야 했을 고통은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겠는가?!

조선에 물레방아가 최초로 설치된 해가 1792년이었다고 한다. 연암 선생이 1780년 동지사 사절에 동행했다가 안의마을 현감으로 나아간 해에 물레방아를 시설한 것이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에 근거하여 우주운항의 법칙을 밝힌 `프린키피아`를 출간한 연도가 1687년이었다. 그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시점에 비로소 조선의 작은 마을에 처음 설치된 물레방아. 서세동점이 아니라 해도 조선의 멸망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오늘날이라 해서 크게 다를 바 없다. 많고 많은 전문가들은 권력자의 부름을 얻고자 동분서주 하지만 정작 그들의 쓰임새와 민초를 바라보는 시각은 물음표로 차고 넘친다. 민생과 민권과 민을 위한 후생복지를 구두선(口頭禪)으로 되뇌는 정치가는 많지만, 이용후생의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 허명과 출세에 급급한 지식인이 줄어들지 않는 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앞날은 밝지 않다. 현동의 `주영편`과 연암의 `열하일기` 독서가 절실한 가을날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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