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규열<br /><br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맑고 높고 푸르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한결같이 드는 마음이다. 어떻게 자연은 이렇게나 싱싱하고 깨끗한 계절을 선사하는 것일까.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저만큼 상쾌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한 겨울 모진 눈보라를 견디고 새 봄에 싹을 틔운 자연이 한여름 무더위를 돌아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하는 계절에 하필 이토록 우아하고 감미로운 바람과 공기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마치 모진 날들과 수많은 구비들을 견뎌 왔으니 이제는 그 수고와 노력에 상이라도 주는 듯 말이다. 그런데 자연은 그렇다 치고 사람은 과연 이같이 과분한 상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자연은 우리에게 이런 모습을 다시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마다 한 번씩 이 계절을 허락하는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높고 오늘보다 맑으며 앞으로는 늘 깨끗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우리 지역에 말도 많고 탈도 많다고 한다. 아니 딱히 이 지역 뿐 아니라 세상 어디라고 갈등과 분열의 소지가 없는 데가 그 어디에 있을까.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를 놓고 다투는 모습을 보면, 늘 아슬아슬하고 불안불안하다. 저러다가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세상을 맞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럴 때엔 어찌해야하는 것일까. 저처럼 꽉 막힌 대화의 물꼬를 어떻게 틀어낼 것인가. 천혜의 계절 가을이 건네주는 힌트를 한번 열어 보기로 하자. 먼저, 높아야 한다. 지금보다 높은 수준의 대화와 담론이 만들어 져야 한다. 오늘 다투고 있는 자리에서 같은 주장만 반복하는 일은 나의 이익에만 함몰되게 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결국 성토가 되고 규탄이 되고 말아, 서로에게 한없는 상처를 안기면서 등을 돌리게 할 뿐이다.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 먼저 살필 일이며, 나의 주장에서 양보할 구석은 또 없는지 들여다볼 일이다. 그래서, 대화와 토론의 물길이 높아져야 한다.

둘째, 맑아야 한다. 투명해야 한다. 나의 주장 뒤에 혹 그 어떤 말 못할 욕심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 보아야 한다. 이 일이 우리 뿐 아니라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에게도 모두 득이 되고 덕이 되는 방법은 혹 없을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진정으로 맑기 위하여는 나의 생각하고 주장하는 바에 대하여도 다시 헤아려 보는 아량과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무엇을 위하여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인지도 겸허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오늘의 사익도 중요하지만 내일의 공익이 더 중요하다. 함께 잘 살아가는 지역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사심 없이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셋째, 하지만 가을은 짧다. 오래오래 누렸으면 싶은 계절이 어느 틈에 금방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이제 곧 혹독한 겨울이 다가올 것이고 우리는 힘든 계절을 맞을 채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담론과 대화도 끝없이 이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주장이 더 많이 반영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함께 나누고 결정하여 진행할 일이라면 적정한 수준에서 생각을 모으고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갈등의 골짜기를 하염없이 파헤칠 일이 아니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하여 결론을 얼른 만들어 가야 한다. 비난과 비방으로 속절없이 날들을 허비할 일이 아니며, 하루라도 바삐 대화의 틀을 만들고 담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새 길을 닦고 통로를 만드는 일에 대화가 끊기고 소통이 어렵다는 건 그 자체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매우 구체적이며 기술적인 일이라서 대화가 어렵다는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모든 일에는 본질이 있는 것이다. 그 본질을 다시 살피고 지역의 미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생각을 새롭게 모아 원만한 해결방안을 찾아보았으면 한다. 모든 계절 가운데 빼어난 계절, 가을을 닮은 도시를 만들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