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재 종

머룻빛 어둠을 지우는 동살이여

왕머루가 덩굴손으로 더듬자

허공이 목을 긁적이며 눈뜨네요

골안개가 허리 아래를 흐르자

산이 발을 떼어 산책에 나서네요

까치가 흰무늬 날개를 펴고

또 하루치의 윤무를 시작하면

혼곤한 마음이 남빛 하늘로 열리고

밤꽃이 정액 냄새를 내뿜자

바람도 벌써부터 단내를 내뿜네요

동살 끝 부챗살로 퍼지는 햇귀여

보이지 않는 길의 눈물들이

아침 풀끝에 이슬 알알로 빛나고

보이는 길의 메마름을 적시네요

생명력이 넘치는 자연 현상들에 시인의 눈이 깊이 스며 있다. 교감과 상호작용에 의해 왕성한 생명작용을 하는 자연은 경이로운 것이다. 자연의 미미한 현상 하나도 그저 이뤄지지 않는다.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아름다운 생명 하나를 일구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읽어내는 시인이 이미 거기에 동화되어 자연의 일부가 되어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