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러스 출신, 황금멤버의 한축
44세 젊은 나이 심장마비로 별세

▲ 조진호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연합뉴스

1990년대 포항스틸러스 황금멤버의 한축이었던 조진호 부산아이파크 감독이 4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축구계가 충격에 빠졌다.

10일 오전 조진호 감독은 부산의 클럽하우스로 출발하기 위해 숙소를 나서던 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던 중 심장이 멈췄고,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음에도 결국 숨을 거뒀다.

조 감독은 선수시절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1991년과 1993년 U-20 월드컵 대표로 뛰며 청소년 레벨을 일찌감치 뛰어넘은 그는 1994년 미국월드컵에 대표팀 명단에 최연소(당시 20세) 멤버로 뽑혔다.

스페인, 볼리비아전에서 출전기회를 잡지 못한 그는 예선 3라운드 독일전에 서정원과 교체로 출전, 팀은 비록 2-3으로 패배했으나 후반 막판 추격전에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눈길을 끌었다.

뛰어난 활약은 프로무대에서도 이어졌다.

1994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포항의 지명을 받은 조 감독은 계약금 1억2천만 원이라는 당시 구단 최고액으로 입단계약을 체결했다.

조 감독의 입단으로 황선홍, 라데, 홍명보, 박태하, 최문식 등과 함께 황금멤버를 구성한 포항은 FA컵 우승,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현 AFC 챔피언스리그) 2연패 등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특히 1996년 최초로 열린 FA컵 대회에서 조 감독은 4경기에서 3골을 터뜨리며 팀의 우승과 함께 대회 MVP에 선정됐다.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던 그의 축구인생은 단 한 번의 실수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1994년 한국대표팀 최초의 외국인감독으로 선임된 비쇼베츠 감독이 장신 선수들을 선호했던 탓에 신장 173㎝로 작은 축에 속했던 조진호는 대표팀에서 출전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기용하지 않은 감독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1995년 2월 제3회 홍콩 다이너스티컵이 열리는 기간 대표팀을 무단으로 이탈하는 돌출행동을 저지르고 말았다.

결국 그는 6개월 간의 선수 자격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고, 이미 등을 돌린 여론은 그에게 냉담하기만 했다.

이후 고질적인 무릎부상과 잦은 슬럼프에 시달리며 주전 경쟁에서도 밀려난 그는 2000년 부천 SK(현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하지만 더이상 그에게서 전성기 시절의 모습은 찾기 힘들게 됐고 프로 통산 119경기 출전 15득점 8도움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2002년 선수생활을 끝냈다.

은퇴후 그가 선택한 것은 지도자로서의 길이었다.

2003년 제주의 코치로 지도자생활을 시작한 조 감독은 2013년 대전시티즌 수석코치 재임시절 김인완 감독이 건강문제로 감독직을 놓으면서 감독대행을 맡게 됐고, 시즌 막판 리그 6경기 무패 등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지도력을 인정받아 감독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14년 K리그 챌린지에 추락한 대전을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시키며 2015년 클래식으로 재승격시킨 뒤 시즌초반 성적부진을 책임으로 사퇴했다.

조 감독은 휴식기 동안 독일유학을 다녀온 뒤 2016년 상주상무를 맡아 팀을 창단 최초로 상위스플릿에 진출시키며 지도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조 감독의 돌풍은 2017년 부산아이파크에서도 이어졌다.

챌린지에 속한 부산은 33라운드 현재 리그 2위를 기록하며 내년 시즌 클래식 승격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터라 그의 갑작스러운 비보는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