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
▲ 배개화 단국대 교수

단군 이래 가장 긴 연휴가 끝났다. 연휴가 끝나고 보니, 연휴 전에 세운 여러 가지 계획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보낸 것 같은 아쉬움도 있다. 또 빼먹은 수업 보강 때문에 종강이 늦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긴 휴가가 꼭 반가운 것만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긴 휴가를 이용해서 가족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이 다들 바빠서 필자도 빨리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시간이 더 있었다고 해도 더 오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명절 당일 오후가 되면,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고향에 내려오면 정말 매우 노동 강도가 높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수면부족 상태에서 고향에 내려가서 가족들과 함께 시장에 가서 제사떡이나 친지 선물 등을 사고, 저녁 늦게 잠든다. 추석 당일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차례를 지내고 친척들에게 점심 대접을 하면 2시쯤 된다. 이때쯤 되면, 슬슬 집으로 가고 싶어진다.

집으로 올 때는 동생이 모는 차를 타고 5시간 동안 함께 왔다. 처음에는 서로 커피도 마시고, 군것질도 하면서 기분 좋게 출발한다. 처음에는 대화도 매우 화기애애하게 시작된다. 우리 가족은 정치적 견해가 비슷하기 때문에 정치 이야기를 하면 대화가 매우 잘 통한다. 가끔은 동생들이 나보다 한국 정치를 더 잘 아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에도 위기가 있다. 중간 중간 한 동생이 필자에게 짜증을 낸다. 가끔 필자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평불만을 말할 때가 있는데, 그런 이야기가 너무 듣기 싫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오랜 만에 만났는데, 서로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가도 시간이 아까운 판이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스트레스를 주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가족이라고 너무 편하게 생각하고 되는 대로 말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추석 다음날은 목요일이다. 날짜를 보니 아직도 휴가가 5일이나 남았다. 그러나 필자는 남은 휴가 시간을 즐기면서 보내지는 못했다. 논문을 써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이다. 학기가 시작되면 논문에만 집중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긴 연휴는 논문을 쓸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래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학교로 간다. 가서 혼자 연구실에서 컴퓨터를 켜고 논문을 어떻게 쓸지 고민한다.

그런데 어떻게 써야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고향에서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립 서비스를 많이 하지 못하고 말다툼이 있은 것이 왠지 논문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놀 때는 노는 일에만 집중하고 다른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결국 오랜 만에 만든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짜증과 말다툼으로 망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필자는 속이 상해버린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시민들은 긴 연휴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이 반반이라고 한다. 연휴 덕분에 일이 줄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일이 더 늘어서 휴식 시간이 주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연휴 동안 일을 했고, 필자의 동생들도 휴가 기간 동안 집에서 일을 했다. 우리처럼 집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휴가가 진정 휴가가 아닌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왠지 지금까지 제대로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배웠다면 이렇게 긴 여유시간을 좀 더 즐겁게 보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을 좀 더 풍부하고 길게 느끼며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 필자의 나이에 그럴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은 많이 노는 것이다. 진심으로 필자는 어서 빨리 일중독을 극복하고 삶을 좀 더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