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내한공연서 영화인생 총망라
`라라랜드` 저스틴 허위츠도 첫 공연

▲ 한스 짐머(오른쪽) 첫 내한공연. /프라이빗커브 제공

영화 `라이온 킹`의 오프닝 곡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가 생생한 목소리로 울려 퍼지자 1만5천 관객이 탄성을 터뜨렸다.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60)가 지난 7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7`(Slow Life Slow Live 2017·이하 슬라슬라) 무대에 섰다. 첫 내한공연이었다. `21세기의 모차르트`로 불리는 그는 영화음악을 통해 관객을 아프리카의 대초원으로(라이온 킹),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으로(글래디에이터), 우주로(인터스텔라) 쉴새 없이 데려갔다.

“안녕하세요, 좋은 밤입니다. 여러분!” 밤 8시 30분께.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테마곡을 직접 피아노로 연주한 한스 짐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 그는 직접 기타를 잡고 키보드를 쳤으며, 오후 11시를 훌쩍 넘겨 앙코르곡까지 선사했다.

공연은 한스 짐머의 필모그래피와도 같았다.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그래미어워즈에서만 36번 노미네이트되고 7번 수상한 그는 `레인 맨`, `델마와 루이스`, `크림슨 타이드` 등 초기 작업물부터 `캐리비안의 해적`,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다크나이트` 등 최근 작품까지 고루 선보였다.

화려한 무대도 볼거리였다. `라이온 킹` 순서에서는 거대한 스크린으로 붉은 해가 솟구치는 영상이 보태져 좌중을 압도했다. 특히 원곡을 불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뮤지션 레보 엠이 직접 아프리카 줄루어로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며 오리지널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또한, `캐리비안의 해적` 테마곡을 연주할 땐 주목받는 중국계 미국인 첼리스트 티나 궈(郭)가 화려한 퍼포먼스를 곁들여 갈채를 받았다. 한스 짐머가 직접 선별한 19인조 밴드와 국내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은 선 굵은 연주로 짐머 특유의 웅장한 음악 세계를 보여줬다.

차분한 성품의 한스 짐머는 외부 공연보다 스튜디오 작업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은 관객과 소통에 어느 때보다 공을 들였다. 한국말로 인사하는가 하면, 통역사를 준비해 중간중간 생각을 전달했다. 자신의 스태프가 여자친구에게 깜짝 프러포즈하는 순서를 마련하는 등 쉬어가는 코너도 중간중간 배치했다.

공연 말미에는 배우 이병헌이 무대 위로 깜짝 등장해 한스 짐머가 쓴 글을 내레이션으로 대독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과 손잡고 만들었던 `다크나이트` 시리즈와 관련, 조커 역의 히스 레저의 자살과 2012년 7월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상영 중이던 미국 콜로라도주 오로라의 영화관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에 관한 설명이었다.

한스 짐머는 “가사 없이도 유가족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노래를 만들기로 했고, 여러분은 지금 그 곡을 듣고 계신다”고 말했다.

이 행사 관계자는 “한스 짐머 측에서 직접 이병헌을 섭외했다”며 “한국에 꼭 전달하고 싶던 메시지를 가장 잘 알려줄 한국 배우를 원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한스 짐머의 공연에 앞서 분위기를 달군 건 영화 `라라랜드`의 음악감독 저스틴허위츠(32)였다. 2017년 골든글로브 시상식 7관왕, 아카데미 시상식 6관왕에 빛나는 `라라랜드`를 만든 그는 첫 한국 공연에 설렌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분위기는 한스 짐머 때와 확연히 달랐다. 짐머가 영화 영상을 배제하고 오로지 음악으로만 3시간을 끌고 갔다면, 허위츠는 4시 반부터 2시간 동안 야외무대에서 영화 전편을 관람하며 라이브 연주를 듣는 필름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또한, 짐머가 편안한 반소매 차림으로 여러 악기를 연주하고 무대를 종횡무진 장악한 것과 달리, 허위츠는 단정한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조용히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허위츠는 연주 시작에 앞서 “예전 작품인 인디영화 `위플래시`가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아 여러분을 꼭 만나고 싶었다. 좋은 취향을 가졌으니까”라고 농담을 건넨뒤 “유튜브 등에 커버곡을 올려준 분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 정말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인터미션이 2시간에 육박했지만, 관객들은 무대 앞에 돗자리를 깔고 소풍 온 듯 도시락을 먹으며 황금연휴의 끝자락을 아쉬워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