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조상 덕 본 사람들은 해외여행 가고 조상 덕 못 본 사람들만 차례상 앞에 절하는” 추석 연휴가 끝났다.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나 집 한 채 없는 나는 조상 덕 못 본 축에 끼는데, 명절마다 주차장으로 변한 고속도로에 갇혀 한숨 푹푹 쉬는 일을 반복한다. 온몸이 쑤시고 눈 침침하고 소변이 마렵다보면 차창 밖 하늘을 나는 새들은 물론이고 차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뻥튀기 장수마저 원망스럽다.

연휴가 길어서 귀성 차량이 분산되는 데다 해외여행 간 사람들도 많아 고속도로 소통이 원활할 거라고 누가 그랬나. `민족 대이동`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서울에서 1시간 30분이면 가는 충남 당진까지 4시간 넘게 걸렸다. 꽉 막힌 행담도 휴게소 진입로를 보고 겁에 질려 화장실 가는 것도 포기했다. 매년 이 고행을 함께 하는 반려견 순돌이가 멀미를 하는지 뒷좌석에다 구토를 했다. 짜증이 나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어디쯤 왔냐”, “언제쯤 오냐” 전화가 계속 울어댔다.

힘들게 도착한 당진 집, 아버지가 사둔 제철 꽃게와 대하를 쪄 먹고 프로야구 중계 보다가 잠들었다. 예년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차례를 지냈지만 올해는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차례를 안 지낸다는 속설을 따랐다.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기 때문이다. 차례 안 지내니 실컷 늦잠자고 편했다. “음식 준비하지 말고 제발 좀 쉬시라”고 해마다 잔소리해도 멈출 수 없던 엄마의 바쁜 손이 마침내 놀았다.

한나절 걸려 도착해 저녁 먹고 자고, 다음날 점심 먹고 또 한나절 걸려 돌아왔다. 아버지 얼굴 보고 밥 두 끼 먹느라 그 고생을 했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눕히고 스마트폰을 보니 SNS엔 온통 외국으로, 제주도로 여행 간 친구들 사진이다.

명절에 해외여행을 가고, 가족 외식을 하는 요즘의 세태가 몹시 반갑다. 차례상에 홍동백서 틀리고 지방 잘못 쓰면 조상님이 노한다기에 얼마나 전전긍긍했었나. 유교적 가부장 관습에 지나치게 매여 명절의 절차와 형식만 챙기는 사이 보이지 않는 부엌에서 여성들의 희생이 당연시되어 왔다. 가족들이 모여 정을 나누기는커녕 싸우고 헐뜯고 등 돌린 채 헤어지는 일 다반사였다. 누구는 음식 장만하느라 온몸이 결리고, 또 누구는 말다툼의 가시 돋친 말에 상처 입는다면, 명절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번지르르한 차례상이야말로 허례허식이다.

차례를 지내든 해외여행을 가든 가족 외식을 하든 간에 가족끼리 즐겁고 편안하게 보내면 그만이다. 조상의 은덕 운운하며 우쭐하거나 열등감을 가질 것도 아니다. 내 주변에는 조상으로부터 받은 은총 하나 없이도 열심히 벌고 모아 해외여행 간 사람들 많다. 차례상에 피자와 치킨을 올려도 좋고, 교회나 절에 가 기도를 드려도 좋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상을 기억하면서 감사할 것은 감사하고, 원망할 것은 원망하면 된다. 풍습은 풍습일 뿐 절대적 규범이 될 수 없다.

추석 다음날, 할아버지를 모신 국립이천호국원에 가 봉안함 앞에 꽃을 놓아드리면서 나는 할아버지가 젊어서 노름으로 가산 탕진했다던 일이 떠올라 몇 마디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물려준 재산은 없어도 나 어릴 적 몸에 좋다는 한약을 왕창 달여 먹여 이토록 장대한 기골이 되게 하셨으니, 건강이야말로 최고의 상속이자 내리사랑 아닐까.

당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엄마가 봉투 하나를 꺼냈다. 아버지가 준 돈이라고 했다. 내 차 뒷바퀴가 닳아 갈아야겠다며 타이어 값하라는 것이었다. 마모되는 타이어처럼 아버지 마음도 자꾸 얇아진다. 자식 걱정이 늘어난다. 가슴이 환하다 이내 먹먹해졌다. 무연고 묘지나 다름없던 봉분을 새로 이장한 외할머니 산소에 아직 가보지 못했다는 엄마의 말이 쓸쓸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타이어 새로 갈고, 설에는 엄마와 함께 땅끝 해남 외할머니 계신 곳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