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인들의 조급성은 세계에서 두번 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빨리 목표를 성취해야 직성이 풀린다. 식사를 주문해도 빨리 내오기를 바라고 조금만 늦어도 독촉하는 사람들이다. 이를 잘 아는 중국 식당 주인은 한국인들의 성화에 밀가루를 사러가며 `예, 곧 나갑니다.`라는 말부터 한다는 농담도 있다. 우리는 차를 몰아도 남보다 빨리 몰아야 하고, 앞차가 조금만 느려도 경적을 울린다. 동남아의 상점에서는 한국 여행객들이 오면 `빨리 빨리`족이 왔다고 좋아한단다.

추석에 집에 온 아들이 대구의 중앙로가 너무 달라져 옛날 단골집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로마에 갔을 때 12세기에 지은 집에서 숙박한 적도 있는데 보수적인 대구의 모습이 너무 바뀐다는 뜻이다.

한국인들의 조급성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국인들은 조급한 성취 욕구 때문에 벼락부자가 되기도 하고 벼락출세를 하는 사람도 있다.

1960년 겨우 155불이던 우리의 1인 국민 소득이 2017년 2만9천불을 넘어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빠른 것을 매우 좋아하는 한국이 스마트폰 세계 최강국이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계 170여 개국에 산재해 있는 해외 750만 동포 규모도 조급한 우리 민족성이 초래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몇 해 전 위구르족 자치주에서 양꼬치를 파는 조선족을 만난 적이 있다. 연변에서 그곳까지 돈 벌러 왔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그날 저녁 서비스 음식도 푸짐하게 제공했다. 이처럼 한국인들의 조급성에 기인한 성취 지향적 가치가 초래한 긍정적 측면은 수없이 많다.

한편 한국인들의 조급성에 따른 부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청년 세대들은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노력하지 않고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한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을 소위 `3포 세대`니 `5포 세대`니 하는 이유도 이러한 조급성과 무관치 않다. 옛날 같으면 인내하고 기다렸을 일을 오늘의 한국 젊은이들은 너무 쉽게 좌절하고 포기한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위로 책까지 나왔다. 한국의 자살률이 인구 10만명 당 33.5명으로 OECD 국가 1위이고, 교통 사고율도 1, 2위를 다툰다. 모두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조급증이 초래한 비극이 아닐까. 이러한 사회에서는 부자도 권력자도 하루아침에 실패자(loser)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한국의 정치마저 우리의 조급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해방 후 70여 년 동안 너무 변화무쌍한 정치적 위기를 경험해 보았다. 그동안 우익 독재와 군부 독재도 경험해 보았다. 정당간의 정권 교체도 세 번이나 체험한 아시아의 유일 국가이다. 그러한데도 아직 툭하면 광장 민주주의가 위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한국의 정치는 역동성이 살아 있다고 외국에서 칭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문화는 아직도 후진적인 신민 형과 향리 형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의 분당과 합당도 수없이 보아왔고 당 명도 수시로 바뀌고 수명도 짧다. 아직도 극한적인 갈등과 대립의 정치는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상대를 관용하기 보다는 상대를 부정하는 정치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우리의 조급한 성격과 무관치 않으며, 퇴행적인 정치문화의 그림자이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조급성에 따른 퇴행적인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경제는 세계 10위권의 강국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정치가 후진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도 `더디 가도 사람 사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그 순서를 밟고 기다리는 문화를 정착해야 한다. 어느 정권이나 속전속결하여 하루아침에 정치적 성과를 내려고 한다. 조급한 국민일수록 `기대 상승의 혁명`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단번에 만족시키기 어렵고 사실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집권 여당은 눈앞의 포퓰리즘이나 성과주의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