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블랙리스트(blacklist) 문제가 또다시 정치권의 핵심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번 국정 농단 관련 국회 청문회에서 제기되었던 이 문제는 피해 당사자의 고소로 다시 클로즈업 되고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고위 공직자들이 현재 구속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원래 블랙리스트는 사용자가 노조를 만들려는 사람을 미리 파악하여 `요주의 인물`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말이다. 이 용어는 오늘날 정부나 수사 기관이 파악한 위험인물이나 `감시 대상자 명단`으로 전용되고 있다. 정부 여당이 밝힌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문화 예술계 전반에 걸쳐 82명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블랙리스트의 역사는 해방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9년 검찰과 경찰에서는 과거 좌익 활동의 전력이 있는 자를 계도할 목적으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시켰다.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이 정부를 믿고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경찰과 관련부서에서는 그 명단에 포함된 사람을 법적 절차 없이 처형하였다. 그 후 자유당과 군사 독재 정권하에서 반정부인사는 `요시찰 인물`로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리스트에 포함된 수많은 청년 학생 지식인들이 구금되고 처벌받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고질적인 블랙리스트는 수차례 정권 교체가 된 이후에도 잔존했다는 사실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블랙리스트의 작성 목적은 반정부 인사에 대한 제재와 차별을 위함이다. 이러한 블랙리스트는 정상적인 정치(govern)가 아닌 일종의 통치(reign)의 과잉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9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문화계의 반정부적 성향의 인사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이 블랙리스트가 문화 예술계뿐만 아니라 학계나 출판계까지 확대되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과거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통해 반정부적 인사를 통제하고, 국가 공권력이 댓글을 통해 친정부적 성향을 유도하고 지원했다는 민주화에 대한 반역이다. 다원주의적 민주적 원리가 제대로만 작동했다면 이러한 사태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사실 보수 정권 9년간 세계 인권기구 등에서는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한다는 경고음을 울렸다. 그러므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구금도 이를 무시한 권력의 독점과 독단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이번 블랙리스트 사건도 반대파를 차별하고 제거하겠다는 반민주적 발상에서 비롯된 후진적인 정치행태이다. 과거의 권위주의적 정부 시절의 최고 권력자에 대한 과잉충성이라는 악습이 재현된 것이다. 정당간의 정권 교체를 통해 아시아의 정치 선진국임을 자부하는 이 나라에서 이러한 블랙리스트가 존치했다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은 역사에서 민주주의는 일시적 후퇴는 있어도 영원한 퇴보는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가 공권력은 문화 예술인들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통제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그에 따른 책임을 엄격히 물어야 한다. 차제에 권위주의 시대의 악습이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블랙리스트에 대한 방지책이 철저히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블랙리스트 피해자의 구제 절차도 반드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헌법 22조가 보장하는 학문과 예술의 자유는 어떤 명분으로도 침해될 수 없다. 정부 여당은 정치적 보복이라는 야당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그 원인과 재발 방지책을 철저히 마련하여야 한다. 문화계까지 친정부나 반정부, 좌익과 우익이라는 라벨은 완전히 제거하여야 한다. 나아가 문화 예술에 정부의 간섭보다는 자율성과 자정기능을 회복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