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 타점, 득점, 최다 루타 `추종불허`

`국민타자` 이승엽이 걸어온 길

이승엽은 경북고등학교 시절 투수와 타자에서 모두 높은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1995년 고졸우선지명을 통해 계약금 1억3천200만 원, 연봉 1천만 원의 조건으로 삼성에 입단했다.

좌완투수 유망주였으나 고교시절 팔꿈치부상 전력이 있어 투수훈련에 어려움을 겪은 이승엽은 스프링캠프에서 박승호 당시 타격코치의 권유로 타자로 전향하게 됐다.

스프링캠프를 통해 주전 1루수로 낙점받은 그는 데뷔시즌인 1995년 타율 0.285, 13홈런, 73타점을 기록하며 타격재능을 인정받았다.

`홈런왕`이라는 수식어가 그의 이름에 본격적으로 따라붙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다.

이전 2시즌 동안 통산 22홈런에 그쳤던 그가 1997년 한 해 동안 32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홈런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타점(114점)과 최다안타(170개)까지 1위를 싹쓸이한 이승엽은 생애 첫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며 전성시대를 열었다.

KBO리그에 외국인선수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된 1998년에는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 외국인 1루수 타이론 우즈와의 홈런왕 경쟁이 눈길을 끌었다.

두 선수는 시즌 내내 치열한 홈런레이스를 펼치며 KBO리그 흥행의 원동력이 됐다.

당시 29세로 전성기에 있던 타이론 우즈는 마침내 장종훈이 가지고 있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41홈런)을 넘어서며 타율 0.305, 42홈런, 103타점으로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다.

이승엽은 38홈런, 102타점으로 두 부문 모두 우즈에 밀려 2위에 그쳤다.

와신상담한 이승엽은 1999년 마침내 폭발했다.

KBO리그 최초로 50홈런을 넘어서는 대기록을 작성한 그는 홈런(54), 타점(123), 득점(128), 출루율(0.458), 장타율(0.733) 등 타격 5개 부문을 석권하며 우즈에 빼앗겼던 정규시즌 MVP를 되찾았다.

2000년 36홈런으로 홈런 4위에 그친 이승엽은 2001년부터 3시즌 연속 홈런왕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특히 47홈런을 쳐낸 2002년에는 양준혁, 마해영, 브리또와 함께 타선을 이끌며 삼성의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LG트윈스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에 터진 이승엽, 마해영의 연속홈런은 지금까지도 한국시리즈 역대 최고의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2003년에는 또 한 번의 홈런역사를 만들어냈다.

시즌 초반부터 심정수(당시 현대유니콘스)와 홈런레이스를 펼친 이승엽은 56번째 홈런을 터뜨리며 왕정치가 1964년 일본프로야구에서 세운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55홈런)을 갈아치웠다.

이승엽은 같은해 타점왕(144점)과 득점왕(115점)도 차지하며 통산 5번째 정규시즌 MVP에 올랐다.

이렇게 한국에서 9년간 수많은 업적을 쌓은 이승엽은 2004년 일본프로야구라는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게 됐다.

연봉 2억 엔의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퍼시픽리그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한 것이다.부푼 꿈을 안고 일본에서의 첫 시즌을 맞이한 이승엽은 기대와는 달리 타율 0.240, 14홈런, 50타점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두며 야구인생 첫번째 실패를 맛봤다.

삼성 조귀복귀설까지 나돌며 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그는 절치부심하며 부활을 준비했다.

2005년 타율 0.260, 30홈런 82타점으로 반등에 성공한 그는 한신타이거즈와 맞붙은 일본시리즈에서 3홈런을 폭발시키며 지바 롯데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바비 발렌타인 당시 지바 롯데 감독의 플래툰 시스템을 뚫어내고 얻은 결과라 더욱 뜻깊었다.

이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이승엽은 2006년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명문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입단 첫해 팀의 4번타자로 자리매김한 이승엽은 타율 0.323, 41홈런, 108타점으로 일본 진출 이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2007년에도 활약을 이어가 타율 0.274, 30홈런, 74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3년간 손가락 수술로 인한 부상후유증, 슬럼프 등으로 오랫동안 부진에 빠졌다.

2011년 오릭스 버팔로스로 이적, `코리안특급` 박찬호와 한솥밥을 먹으며 재기를 다짐했으나 시즌 전 공인구가 반발력이 적은 것으로 교체되면서 찾아온 극심한 투고타저의 영향을 받아 타율 0.201 15홈런, 51타점이라는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해당 시즌을 끝으로 8년 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기로 결정한 이승엽은 2011년 10월 21일 오릭스의 고베 홈구장인 호토모토 필드에서 공식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승엽은 같은해 11월 4일 한국에 돌아오면서 연봉 8억 원, 옵션 3억 원 등 총액 11억 원의 역대 최고 금액으로 친정팀 삼성에 복귀했다.

복귀 후에는 주 포지션인 1루수가 아닌 지명타자로 대부분 경기에 나섰다.

복귀 첫해인 2012년 타율 0.307, 21홈런, 85타점으로 건재를 과시했으며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홈런 7타점으로 데뷔 첫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2013년에는 올스타전 홈런레이스에 참가해 KIA 나지완과의 결승대결에서 6-2로 승리하며 데뷔 첫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허리부상에 시달리며 1996년 이후 최저인 13홈런에 그쳤으며 타율도 0.253에 머무르며 `이승엽의 시대가 끝났다`는 우려까지 일기도 했다.

2013년의 부진을 거울삼아 2014년 시즌을 앞두고 타격자세를 교정했고, 이 결과 37세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3할-30홈런-100타점 기록(타율 0.308, 32홈런, 101타점)을 달성하며 국민타자의 부활을 알렸다.

2015년과 2016년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3할 타율과 홈런 25개 이상, 타점 90점 이상을 달성했다.

2016년 8월 24일 대구 SK전에서는 2회말 무사 2루에서 중전 적시타를 날리며 1천390타점으로 선배 양준혁이 보유 중이던 KBO리그 통산 최다타점(1천389점) 기록을 넘어섰다.

같은해 9월 14일 대구 한화전에서는 한일통산 600호 홈런을 돌파하며 금자탑을 쌓았다.

마지막 시즌인 2017년 7월 29일 고척 넥센전에서는 KBO리그 최초로 4천루타를 달성했다.

이승엽 주요 기록 달성일

△1999년 5월 5일 대구 현대전, 최연소 통산 100홈런(만 22세 8개월 17일, 상대 투수 3회 정명원)
△2001년 6월 21일 대구 한화전, 최연소, 최소경기 통산 200홈런(만 24세 10개월 3일, 816경기, 상대 투수 8회 김정수)
△2003년 6월 22일 대구 SK전, 세계 최연소, 최소 경기 통산 300홈런(만 26세 10개월 4일, 1075경기, 상대투수 8회 김원형)
△2003년 10월 2일 대구 롯데전, 한 시즌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56개) 경신(상대 투수 2회 이정민)
△2012년 7월 29일 목동 넥센전, 한·일 통산 500홈런(상대 투수 4회 앤디 밴 헤켄)
△2013년 6월 20일 문학 SK전, KBO 리그 통산 최다 홈런 기록(352개) 경신(상대 투수 3회 윤희상)
△2015년 6월 3일 포항 롯데전, KBO 리그 통산 400홈런(상대 투수 3회 구승민)
△2016년 9월 14일 대구 한화전, 한·일 통산 600홈런(상대 투수 2회 이재우)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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