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호<br /><br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김광석! 80년, 90년대 순수하고 감성적인 노래로 지금 40대 이후 연령층을 울리던 가수다. 그러나 애잔하고 감성을 파고 드는 그의 노래는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애창되고 있다.

최근 다시 사람들에게 김광석의 노래가 화제가 되고 있다.

필자도 정말 그를 좋아했고 좋아한다. 그의 히트곡은 수없이 많지만 `이등병의 편지`는 특히 필자가 젊은시절 가슴으로 안고 듣던 노래이다.

그랬던 그가 20여 년 전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자살이라고 했다. 의문투성이 죽음을,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죽음이었는데도 경찰은 자살로 처리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고 10년 전 그의 하나 남은 딸마저 숨졌다는 사실이 이제야 알려졌다.

그리고 두 사람의 죽음을 증언하는 김광석의 처가 TV 방송에 나왔다.

남편과 딸을 잃은 사람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슬픔도 없어 보이고 논리에 맞지않는 변명과 과장되고 현란한 손짓으로 마치 거짓을 이야기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김광석! 그는 누구인가?

그는 1964년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노래하는 철학자`로도 불린다. 2014년 제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장이 추서됐다.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해 1982년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가요 공연을 시작했다.

1984년 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했으며, 노찾사 1집에도 참여했다. 이후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일반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통기타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다.

사실 그의 인기는 통기타 솔로 시절 빛을 발했다. 그의 콘서트는 낭만과 정서에 목마른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그의 노래에 젊음의 힘든 시절을 견뎌냈다.

그의 사후 2007년, 그가 부른 노래 중 하나인 `서른 즈음에`가 음악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됐다. 2008년 1월 6일에는 12주기 추모 콘서트와 함께 대학로의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 또한 2010년 그가 태어난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에는 그를 기리는 `김광석 거리`가 조성돼 350m의 길에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다양한 벽화와 작품들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그의 짧은 인생과 비극적 죽음을 보면서 `배우자의 선택`이 한 인간의 일생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낀다.

순수의 덩어리, 그리고 젊음의 감정 전도사였던 그의 죽음은 결국 배우자 선택의 잘못에서 비롯됐다.

결혼사실을 숨기고 아이까지 있었던 사람이 팬이라고 의도적으로 접근해 이뤄졌던 결혼식은 사실상 사기극에 가까웠다. 어떻게 김광석이 그런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했는지 정말 미스터리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타살의혹이 짙다. 그 배우자는 김광석 사망 후 다른 남자와 하와이로 이주, 상당기간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피성 이주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딸을 기르는 것처럼 언론에 흘렸던 그녀의 거짓된 말과는 달리 딸은 이미 10여 년 전 숨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TV에 나온 그녀의 표정과 몸짓을 보면서 잘못된 `배우자의 선택`이 한 천재 가수를 파멸에 이르게 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젊어서 사랑에 빠지면 객관적인 눈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오랜 경륜에서 오는 부모님이나 이웃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수 김광석의 이른 떠남과 가족의 비극을 보면서 배우자의 선택이 한 일생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낀다.

이제 `김광석`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