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상, `범죄도시`서 첫 악역 도전
“더 악랄, 섬뜩하게 연기하려 노력”

▲ 생애 첫 악역에 도전하는 윤계상은 영화`범죄도시`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조직 보스 장첸으로 출연한다. /메가박스 플러스엠 제공

으슥한 폐차장. 거울 앞에 서서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모아 고무줄로 단단히 돌려 묶고는 도끼를 집어 들고 인정사정없이 내리찍는다. 영화 `범죄도시`에서 윤계상이 등장하는 첫 장면이다.

서늘한 눈빛에 옌볜사투리를 쓰는 그의 모습은 처음에는 낯설지만, 영화가 끝난뒤에는 강한 잔상을 남긴다.

2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계상은 “그동안 주로 젠틀하고 선하거나 방황하는 청춘, 혹은 지질한 역할을 많이 했다”면서 “존재만으로도 무서워 보이는 역할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가 맡은 배역은 중국 하얼빈에서 넘어온 조폭 두목 장첸. 돈 되는 일이라면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칼과 도끼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악귀 캐릭터다. 강한 역할에 목말라 있던 윤계상은 “시나리오를 보고 악역의 `아우라`가 세게 느껴져 단번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첫 악역 도전인 만큼 두 달간 옌볜사투리를 배우고, 몸집을 키우는 등 준비도 철저히 했다. 그의 노력의 결과는 스크린 안팎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촬영장에 제가 나타나면 어느 순간 스태프조차 슬슬 피했어요. 시사회에서 영화가 끝난 뒤 무대 위에 서면 관객들도 저를 보고 겁먹은 표정을 짓더라고요. 하하”

장첸은 극 중 정의의 형사 마동석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윤계상은 “제가 무조건 `나쁜 놈`이 돼야 동석이형 등 형사 캐릭터들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가능한 한 더 악랄하게, 섬뜩하게 연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소심한 성격의 집돌이”라는 그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마음고생도 했다. “촬영장에 갔다가 집에 오면 이상하게 후회와 죄책감이 남아서 고통스러웠죠. 저 때문에 어떤 사람이 아파하는 꿈을 꿨을 정도예요.”

그는 외모에도 변화를 줬다. 뻔한 조폭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장발을 제안했다.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촬영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짧은 기장에 긴머리를 붙이다 보니 두피에 피가 맺힐 정도로 너무 아팠죠. 액션보다 장발을 붙이는게 더 힘들었을 정도예요.”

인기 그룹 지오디 출신인 윤계상은 2004년 팀에서 탈퇴한 이후 10여 년간 연기에 매진하며 어느덧 중견 연기자가 됐다.

영화 `비스티보이즈`(2008), `풍산개`(2011), `소수의견`(2015)을 비롯해 드라마 `최고의 사랑`(2011), `라스트`(2015) 등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쉬지 않고 활약했다. 필모그래피가 늘어날수록 연기력은 인정받았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흥행 면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탓이다.

그러다 지난해 전도연·유지태와 호흡을 맞춘 tvN 드라마 `굿 와이프`에서 첫사랑만을 바라보는 법률사무소 대표 서중원 역을 맡아 히트를 쳤다.

“사실 `굿 와이프` 이전까지 오랫동안 슬럼프에 빠져있었어요. 제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평가에서는 외면받을 때가 자주 있어서 너무 욕심을 부린 건가 생각했죠. 그러다 `굿 와이프`가 사랑을 받으니까 다시 에너지가 생기더라고요.”

한 계단씩 차곡차곡 밟아 올라온 윤계상은 올해 한국 나이로 불혹이다. 인기 아이돌 가수에서 신인 연기자, 그리고 중견 배우가 된 그는 “나이가 들면 어른스러워질 줄 알았는데, 20대나 30대 시절과 (사고나 행동이) 똑같다”며 웃었다.

지오디 멤버들도 여전히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VIP 시사회 때 지오디 멤버들을 초대했는데, 영화 본 뒤 다들 옌볜사투리를 흉내 내더라고요. 지금도 사투리로 대화해요.”

윤계상은 `범죄도시`로 다시 한 번 도약을 꿈꾸고 있다. 추석 연휴 때도 `범죄도시` 홍보에 올인할 예정이다.

“제가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는 아니지만, 이번 작품이 정말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에는 그동안 단역이나 조연만 해온 많은 배우가 오디션을 거쳐 출연했거든요. 강윤성 감독님은 17년을 기다려 메가폰을 잡았고요. 영화가 잘돼서 배우들과 감독님이 이름을 알렸으면 좋겠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