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자유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원래 협치(協治)이다. 민주주의의 정당정치는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정치를 생명으로 한다. 일당 독재인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형식은 공산당이 정치 협상회의를 통해 사회단체와 협력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북한 체제도 사실상 노동당 일당 독재이지만 사회 민주당이나 천도교 천우당과 같은 우당(友黨)을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민주주의 정치는 복수 정당제를 운영하면서도 정당 간 협치인 가버넌스(governance)를 통해 유지 발전하는 이념이며 제도이다.

지난 20대 총선 이후 한국정치는 다당제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집권당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121석, 자유한국당 107석, 국민의당 40석, 바른정당 20석, 정의당 6석, 새민중정당 2석 순으로 의석이 분포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서 야당의 협력 없이는 당면한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여러 개혁 정책을 제시했으나 협치 없이는 그 실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직도 헌재 소장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공석중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번 김명수 대법원장의 국회 인준은 협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의미있는 사례이다. 국민의당 의원들이 자율투표로 상당수 찬성표를 던진 결과이다.

한국 정치에서 여야는 모두 겉으로는 협치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협치는 사실상 어려운 것이 정치 현실이다.

우리 정치에서 협치가 이처럼 어려운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한국의 정치는 아직 정당 간의 타협과 협력을 굴종이나 변질로 보는 정치 풍토가 온존해 있기 때문이다. 과거 독재 정권하에서 여당에 협조하는 야당을 `사꾸라 정당`이라는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므로 야당은 집권 여당에 무조건 반대하거나 투쟁해야 정당성을 인정받는다는 정치 관행이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여야의 입장이 뒤바뀐 정권 교체가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과거 권위주의 정치 시대의 누적된 병리 현상이며 후진적인 정치 유산이다.

그 결과 이 나라의 정치의 내면에는 협치와는 거리가 먼 붕당 정치, 파벌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나라의 의회는 수시로 문을 닫아 식물 국회가 되고 여야의 대화는 단절되기 일쑤이다. 정당간의 정권교체가 되어도 파쟁의 정치, 보복 정치는 온존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정치에는 조선조의 사색당쟁과 같은 당파 정치가 아직도 반복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정치는 결국 국민들의 정치에 관한 불신만 자초하여 시민들의 정치적 허무주의는 더욱 팽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치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촛불을 통한 광장 민주주의를 증폭시킨다. 한편 협치가 사라진 곳에서는 갈등의 정치는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다.

이 나라 정치에서 협치를 정착시킬 방안은 없을까. 사실 양당제 보다 다당제가 협치의 토대가 되기에는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의 다당제가 얼마나 어느정도 유지될지는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내년 지방 선거나 총선을 앞두고 정당간의 이합집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처럼 의원들의 사안에 따른 합의와 크로스보팅에 의존하는 협치는 한계가 있다. 협치는 근본적으로 권력 분점에 관한 정당간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 상황에서의 현재의 임시방편식 협치는 불안한 협치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본적으로 독일이나 프랑스의 연정이라는 협치 모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정당간의 공동 정부 수립에 관한 밑그림에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나라 정치에서 협치가 하루 빨리 정착되기 위해서는 여야 간 허심탄회한 대화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당간의 대화를 통한 정치적 신뢰부터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