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상대의 실력을 모르고, 상대의 선의를 구별 못하고, 상대의 반응을 생각하지 않아서 우리는 종종 세상살이에서 낭패를 겪기도 한다. 조선후기의 학자 윤기 선생의 `무명자집(無名子集)`에 실린 `잡설(雜說)`중 한 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거미가 허공에 거미줄을 쳐 놓고 날아다니는 것들을 잡아먹으려고 기다렸다. 작은 놈으로는 모기, 파리에서부터 큰 놈으로는 매미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대로 잡아먹어 배를 채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벌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들었다. 거미는 재빨리 거미줄로 벌을 칭칭 감다가 갑자기 땅에 떨어지더니 배가 터져 죽었다. 벌의 독침에 쏘인 것이었다. 옆을 지나던 어떤 아이가 거미줄에 감겨 벗어나지 못하는 벌을 보고는 손을 뻗어 풀어주려고 하다가 벌의 독침에 쏘였다. 아이는 화가 나서 벌을 발로 밟아 짓이겨버렸다.” 얼핏보면 별 의미가 없을 듯 보이는 우화이지만 인간세태를 절묘하게 그려내며, 우리에게 깨우침을 준다.

거미는 모든 날아다니는 것들을 얽어맬 수 있다는 것만 믿었지, 벌이 독침으로 자기를 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벌은 그저 독침만 쏘면 다 되는 줄 알아서, 자기를 해치는 자와 자기를 구해주는 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쏘아대는 바람에 자기를 구해주려던 자가 도리어 자기를 해치도록 만들었다. 아이는 벌의 독침이 무섭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서 벌을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려고 하다가 벌의 독침 또한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다. 서로에 대해 모르고 행동하는 것은 큰 잘못이 될 뿐이다.

요즘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측 반응을 보면 거미와 벌,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윤 선생의 우화를 떠올리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고 호전적인 `말폭탄` 발언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걸음 더 나아가 북한의 김정은을 로켓맨으로 지칭하며, “로켓맨(김정은)은 자살 임무중….”이라고까지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파격적인 연설은 김정은의 미치광이 전략에 맞서는 또 다른 미치광이 전략이란 분석도 있고, 보수 지지층을 겨냥한 국내 정치용으로, 실제로 전쟁을 염두에 둔 발언은 아니란 설명도 나온다.

북한측은 격렬한 반응을 내놨다.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에 도착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발언에 대해 “`개는 짖어도 행렬은 간다`는 말이 있다”며 “개 짖는 소리로 우리를 놀라게 하려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개꿈”이라고 주장했다. “개가 짖어도 행렬은 나간다(The dogs bark, but the caravan moves on)”라는 구절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굴복하지 않고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낼 때마다 사용했던 표현이다.

다시 정리해보면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과 북핵실험으로 촉발된 동북아 안보위기에 대해 트럼프가 극단적인 `말폭탄`을 던지고, 북한 외무상은 `개소리`란 막말로 맞받아친다. 그 와중에 우리의 청와대는 “북한을 최대한 압박해 비핵화로 나아가자”는 기조를 애써 유지하고 있다. 상대의 실력, 선의, 반응을 생각하지 못한 거미, 벌, 아이들이 맞이한 상황과 비슷하다.

이 대목에서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김정은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을 계속하고 있고, 이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지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이 고집스럽게 핵보유국으로 나아가려는 것은`핵무장만이 체제유지를 위한 유일한 방책`이라고 믿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어떤 `채찍과 당근` 전략을 써서라도 북한을 대화의 장소에 나오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북미회담이 됐든, 남북회담이 됐든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그래야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그런 연후에야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