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적막`
김락기 지음·청색시대 펴냄
시집·8천원

재론의 여지가 없다. 장자(莊子) 철학의 핵심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일체의 인위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인간과 사물이 생겨나온 자연에 거스르지 않으려는 순정하고 담담한 태도.

시조와 시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문학적 이력을 쌓아온 김락기(61)의 시집 `황홀한 적막`에선 바로 이 `장자`와 `무위자연`의 향기가 어렵지 않게 읽힌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더없이 담백하고, 기교를 부리지 않았음에도 품격이 느껴진다. 예컨대 이런 시다.

`아름다운 것은 그대로 두어라/가까이 하려 하지 마라//여름 밤하늘 그토록 빛나며 사라지는 별똥별도/가까이 하면 비수가 되어 꽂히는 운석파편일 뿐.`

- 위의 책 중 `운석비`(隕石雨) 일부.

아름다움은 굳이 제 곁에 두려 애쓰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법. 이 짤막한 몇 줄의 문장을 통해 독자들은 알게 된다. 김락기 시인은 한 걸음 물러서 관조하며 세상사를 해석하는 태도를 이미 체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김락기가 자신의 문학을 통해 보여주는 `무위자연`의 향취는 시집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중 기자가 읽은 백미(白眉)는 `구름 섬 인생`이다. 이런 노래다.

`세상은 또한 사람 섬으로 넘쳐나고/사람은 오만가지 생각 섬을 만들며 살아간다/만들어지고 부서지며 떠도는 그대, 낭인이여/이 세상 누군들 구름 섬 아닌 자 있으랴/생멸하는 구름 섬을 저 아니라 할 수 있으랴.`

시인에게 포착된 `인간의 삶`이란 외따로 떨어져 서러운 섬과 같은 것. 슬프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다. 김락기는 단 5행의 시어(詩語)로 이 부정하기 힘든 생의 진실을 간파해내고 있다. 높은 시적 경지라 부르지 않기 힘들다.

계간 `시조문학`과 월간 `문학세계`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락기 시인은 `삼라만상` `바다는 외로울 때 섬을 낳는다` `고착의 자유이동` 등의 책을 썼다.

한편, 이번 시집 `황홀한 적막`을 접한 서울과학기술대 최서림 교수(시인)는 “김락기의 시는 단순·소박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배워서 터득된 기교가 아닌 절박함의 기교가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적 적막”을 김 시인의 특장으로 지목했다.

그렇다. 장자가 말한바 `무위자연`의 진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어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홍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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