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역사는 반복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정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역사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의 향배를 가늠할 수는 있다. 식민사관의 폐해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많은 국민들은 조선조 중후기에 있었던 당쟁의 폐해를 잘 알고 있고 또 그로 인해서 조선이 패망했다고 굳게 믿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불행히 지금도 망각하며 부정적인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윤추(1632~1707)는 윤선거의 아들이자,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의 아우이다. 선조 때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져 형성된 당파는 숙종 때에 이르러 극에 달한다. 인현왕후의 폐위를 둘러싸고 남인과 서인이 엎치락뒤치락 정권을 차지하는 이른바 환국(換局)이라는 것이 몇 번이나 있었다. 서인은 다시 남인에 대한 처벌 여부를 둘러싸고 강경파인 노론과 온건파인 소론으로 갈린다. 이즈음의 환국은 단순히 정권만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필연적으로 상대편의 목숨을 뺏는 핍박까지 이어졌다.

그의 `농은유고, 여나명촌서` 기록을 보면 아버지의 제자인 나양좌에게 보내는 이 편지에서 당파로 어지러워진 당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다. 내용인즉, `근래에 서원과 문묘가 모두 난잡하니 괴이한 일입니다. 이른바 환국이라는 것은 제 생각에는 그럴 일이 없을 듯합니다. 근래에 조정의 일을 보건대, 분란이 이미 극에 달하여 백성들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니 외방의 감사, 병사, 목사, 수령의 가렴주구가 바야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중국 서한의 말기에는 안에서부터 어지러워져 백성들이 심하게 병들지 않았으므로 중흥을 이룰 수 있었지만, 동한의 경우에는 위아래가 모두 어지러웠으므로 나라가 망했습니다. 오늘날의 형세로 보면 위아래가 모두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더구나 살육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양쪽의 칼날이 서로를 향하고 있으니, 이는 옛날에 없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이미 박두한 화를 또한 어찌하겠습니까?`

그는 당쟁의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조정의 지배층은 백성들의 삶은 아랑곳없이 자신들의 정권 탈취와 정적들의 도륙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지방의 수령들은 이런 중앙의 혼란을 틈타 자신이 다스리는 지방에서 가렴주구를 일삼았다. 이런 상황을 직접 목도하면서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강한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다. 짧고 평범해 보이는 내용이지만 절실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현시대의 상황이 결코 그때와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한국 정당정치는 조선의 당쟁과 거의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심지어 더 심한 대립과 갈등으로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전통사회는 소수 지배층만의 문제였지만 사회가 발달한 지금은 전 국민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당쟁의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입버릇처럼 과거의 부정적인 역사를 거울로 삼자고 하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돼버렸다.

율곡 이이(1536~1584)의 `율곡선생전서, 시폐에 대해 진달한 상소` 내용을 보면, 위기대처능력 인간형을 삼단계로 분류하였다. `상지(上智)의 사람은 미연에 환히 알고 있으므로 난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스리고 나라가 위태롭기 전에 미리 보전하며, 중지(中智)의 사람은 난이 이미 일어난 뒤에 깨닫게 되므로 위태로움을 알고 안정시킬 것을 도모하며, 난이 닥쳤는데도 다스릴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위태로움을 보고도 안정시킬 방도를 강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지(下智)의 사람으로 구분했다.

역사를 볼 때는 뒤에서 어느 한 점을 보기 때문에 자신은 그런 오류에서 자유로울 것 같이 생각하지만 자신이 처한 그 환경 속에서 한 점의 주인공이 되면 생각처럼 처신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면을 객체화시키면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이더라도 지금의 형세는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위선적인 몸짓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반복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