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지난 5일 마광수 교수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저승에서나마 평안과 안식을 누리시기 바란다. 1991년 `즐거운 사라`로 이듬해 강의 현장에서 체포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마광수. 그에게 부여된 죄목은 `음란문서 유포죄`였다.

주지하는 것처럼 소설의 주인공 사라는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즐기는 20대 여대생이다. 그녀는 성별도 노소도 하룻밤 사랑도 가리지 않는다. 일찍이 한국문단에서 그려진 바 없는 사라의 성생활은 문란하기 짝이 없다는 판정을 받는다. 소설은 판금(販禁)됐고, 작가는 구속됐으며, 1995년 대법원 확정판결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마광수는 연세대 교수직에서 쫓겨난다. 거기서 발원한 우심(尤甚)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그를 자살로 인도했다고 전한다.

세월이 흘러 2011년 마광수는 `돌아온 사라`를 출간한다. `즐거운` 사라보다 한층 담대하고 상큼하게 자유로운 섹스를 즐기는 `돌아온` 사라. 하지만 누구 하나 그런 `사라`를 눈여겨보거나 인구에 회자시키지 않는다. `사라`든 `팔라`든 `자라`든 `졸라`든 젊은 여성의 성생활에 개입하려는 검찰도 법원도 경찰도 가부장도 모권도 모조리 사라져버린 것이다. 무엇일까?! 불과 20년 만에 한국의 성풍속도가 급변한 근저에 흐르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사회에서 전근대의 미망(迷妄)이자 시대착오적인 퇴행으로 꼽혀온 것이 `동성동본 혼인금지법`이었다. 그로 인한 자살자가 해마다 언론에 보도되곤 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녀가 동성동본이란 이유로 자살을 선택해야 했던 적막한 살풍경! 그런 엉터리 악법의 효력이 중지된 것은 1997년 7월 헌재의 `헌법불합치판정` 이후였다. 하지만 2005년 3월 31일 민법 제809조가 개정된 후에야 비로소 `동성동본 혼인금지법`의 법률적 효력은 완전 소멸된다.

1991년 1995년 1997년 2005년 2011년, 이런 20년 세월에 한국사회는 국가권력의 선무당 칼춤 아래 신음했다. 즐거운 사라가 한국사회, 특히 돈과 권력을 가진 중년 남성들의 이중적인 성도덕을 질타하자 국가권력이 개입한다. 법질서와 미풍양속의 수호자를 자처한 권력은 비평과 독자의 판단 이전에 작가를 현행범으로 체포·구금한다. 국가가 정작 지켜야했던 것은 `동성동본 혼인금지법`을 폐지해 무고한 청춘남녀의 자살방지 아니었을까?!

소설가 마광수가 내다본 성도덕과 풍속도의 급변을 감지하지 못한 채 `지금과 여기`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일관한 검찰과 법원. 1992년 10월 강의실에서 전격적으로 체포된 마광수의 흉중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을까, 궁금하다. `엄근진` (엄숙, 근엄, 진지) 3자로 무장한 이 땅의 허다한 이중인격자들과 도덕가들과 권력자들을 성적(性的)으로 질타한 마광수. 그의 자살은 그래서 적잖은 불편함과 미안함을 불러일으킨다.

`돌아온 사라`에서 마광수는 이렇게 쓴다.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지독한 패러디이자 조롱과 힐난이다. 진리와 자유의 자리를 뒤바꿈으로써 한국인과 한국사회가 얼마나 부자유하고 진리와 담을 쌓고 살아가는지 폭로하는 일갈. 자유(自由)라는 한자어에는 개인에게 사유와 행동의 시작과 결과를 끝까지 추궁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궁극의 책임을 원인제공자 스스로가 감당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017년 시점에 젊은 여성들의 성적 결정권을 시비하거나 함부로 운위하는 자들은 전원 사멸했다. 술자리 뒷담화로나 떠돌법한 소설을 준엄한 법의 잣대로 평결해 죄수로 만들어버리는 어리석은 작태. `동성동본 혼인금지법` 같은 악법은 살려둔 채 음란문서 운운했던 권력자들과 그에 기생한 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궁극의 자유`를 주장한 마광수의 죽음을 애도하며 시대를 앞서 간 그의 명복을 재차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