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재 형

중년의 사내가

골목 헌 옷 수거함에서 연신

아이들에게 입힐 만한 옷을 뒤져내고 있다

시린 발 밑으로 민달팽이 홀로

알몸 누이려는지

점액질 흘리며 마른 풀숲으로 느린 걸음 옮기고

예나 지금이나

된서리 내린 찬 새벽길을 걷는 가난한

맨발이 많기도 많다

시인은 느린 걸음으로 풀숲을 건너가는 민달팽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사소하고 하찮은 미물이지만 그는 그의 소중한 시간을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느리고 보잘것없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비켜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소중한 실존적 가치를 가진 존재다. 된서리 내린 찬 새벽길을 걷는 가난한 이웃들의 맨발이 많다고 말하는 시인의 시선이 따스하기 그지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