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래<br /><br />수필가·시조시인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텔레비전을 보다가 출연자들이 `와이푸`라는 말을 연발하면 채널을 돌려버리게 된다. 사석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라 공영방송에서도 공공연히 쓰이고 심지어는 탈북자들까지도 와이푸라는 말을 예사로 한다. 한때는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이더니 요즘은 너나없이 `오빠`라고 한다. 외국 사람이 들으면 한국인들은 대다수가 가족끼리 결혼을 하는 줄 알 일이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대한민국 표준어규정에 의하면, 이제는 당연히 `아내`나 `남편`이란 말 대신`와이프`나 `오빠`를 표준어로 정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교양이 있는`이라는 단서에 중점을 두어서 서울 사람 대다수가 교양이 없다는 전제를 하지 않는다면, 남녀 배우자를 일컫는 말로 `와이프`나 `오빠`를 표준어로 삼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내`라는 우리말이 버젓이 있는데도 왜 대다수 남성들이 자기 배우자를 와이푸라고 하는 걸까. 아마도 아내란 말은 왠지 촌스럽고 와이푸라고 해야 세련된 식자층에 든 것 같은 사대(事大)적 열등의식의 발로이거나, 남들이 와이푸라고 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따라서 하게 되는 부류가 대다수일 것이다. 어느 쪽이거나 우리말에 대한 일말의 긍지나 자부심도 없기는 마찬가지일 터이니, 모국어를 그렇게 천시하고 홀대하는 사람들을 어찌 기본적인 양식이나 교양을 갖춘 국민이라 할 수가 있겠는가.

누가 뭐래도 나는 우리의 말과 글을 우리 민족의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꼽는다. 고유한 언어가 없었다면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에도 불구하고 과연 수천 년 동안이나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올 수가 있었을까?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던 유대민족이 다시 뭉쳐서 독립된 나라를 세우면서 민족의 말이었던 히브리어를 복원하는 일을 우선으로 했던 것도 동족으로서의 유대와 동질성을 일깨우고 유지하기 위한 일이었다.

중국에 살고 있는 동포들이 조선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말과 글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일제가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우리의 말과 글을 못 쓰게 한 것도 그것이 곧 우리 민족의 얼이요 문화와 전통의 근간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민족이 비록 간난과 치욕의 역사를 겪으면서도 동질성과 정체성을 잃지 않고 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언어의 힘이라는 걸 누가 부인하겠는가?

말이 곧 사람이다.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다. 불량배들은 불량배의 말을 하고 사기꾼들은 사기꾼의 말을 한다. 물론 선량한 사람은 선량한 말을 하고 진솔한 사람은 진솔한 말을 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학벌과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걸핏하면 막말을 하거나 저속한 말을 내뱉는다면 그는 분명 천박한 인성의 소유자일 뿐이다.

쓰레기나 오폐수는 자연환경을 오염시키지만 함부로 뱉는 말은 정신환경을 오염시킨다.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우리말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 정신상태의 현주소이기도 한 것이다. 비속어를 입에 달고 사는 청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터넷에 난무하는 말의 오염과 파괴는 결국 우리 사회를 폭력과 선정과 비리로 얼룩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욕설과 비속어뿐만 아니라 바른 말인 줄 알고 잘못 쓰는 경우도 말의 왜곡과 오염의 한 원인이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되세요`,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별하지 못하는 말버릇 등이다. 올바른 언어생활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모국어를 아끼고 가꾸는 일인 동시에 심성과 사고를 순화하고 바르게 하는 일이다.

사회를 바꾸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하고 사람을 바꾸려면 말부터 바꿔야 한다. 그래서 `바르고 고운말 쓰기 운동`을 벌이도록 제안한다.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적폐청산의 일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