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규열<br /><br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칡넝쿨과 등나무. 어떤 일이나 사람의 생각 또는 관계가 어지러이 얽혀있어 풀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을 때, 우리는 이를 갈등이라 부른다. 칡넝쿨은 다른 식물을 왼쪽으로 꼬면서 감싸며 자라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꼬아 올라가기 때문에 이 칡과 등나무가 한 곳에서 함께 자라면서 사물을 꼬아 버리면 도저히 풀 수 없는 지경을 만들어 버리는 것을 보고, 이같은 상태를 갈등(葛藤)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도 여러 사안에서 갈등의 싹이 보이거나 갈등이 이미 불거져서 풀어내기 어려운 상태에 빠진 경우들이 더러 보인다. 갈등의 소지를 미연에 예견하여 방지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갈등의 골이 깊어진 나머지 당사자들 간에 소통의 어려움을 겪게 되고 관계가 틀어져 원만한 해결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경우를 허다하게 보는 것이다. 이들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들을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또 사안의 당사자들은 이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갈등은 사실 도처에 존재한다. 지역사회는 물론, 회사든 학교든 사람이 함께 활동하는 공간에는 생각과 의견의 차이는 있을 수 밖에 없으므로 갈등은 오히려 `공동체의 조건`이라고 부를만큼 흔한 것이다. 그러므로 갈등을 무조건 없어야 하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터부시하는 태도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갈등을 지혜롭게 이겨낸 공동체는 그 이전보다 오히려 더욱 성숙하고 든든한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모든 당사자들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갈등을 보다 나은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기회의 통로로 기대하는 이들이 많아질 때에 갈등의 실마리도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둘째, 칡넝쿨과 등나무도 함께 자라기 시작하는 초반에 정리했다면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생기는 갈등 요소들도 이들이 인식되기 시작하는 초반에 대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누구든 불편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퍼져 나갈 것이며, 그 불편한 마음이 공동체 일반에 퍼져나간 다음에는 수습이 어려운 국면을 맞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안의 당사자들은 상대의 생각과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이 모든 갈등의 골짜기 안에서 그 어떤 해결의 실타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지 찾아보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할 것이다. 위기에는 언제나 타이밍이 관건인 것이다. 혹 실기하였다면, 이를 알아차린 순간이 가장 빠른 때라는 것을 명심하여 보다 적극적이며 전향적인 접근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셋째, 사안이 어려울수록 당사자들은 더욱 자주 만나야 한다. 소통이 어려워 지고 관계가 틀어지면서, 서로의 주장이 더욱 강하여 지는 반면 더 이상 한자리에서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기회를 만들기가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다. 때로는 제삼자나 언론매체 등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수단을 통하여 의견을 전달하고 주장을 관철하려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일이 어려울수록 우리는 더욱 `직접` 자주 만나야 한다. 주장만 던지고 귀를 막으며 입을 닫아 버리면 더 이상 문제를 다룰 동력마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힘들수록 직접 만나는 용기를 내어야 하고 어려울수록 면대면으로 생각을 나누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칡넝쿨과 등나무의 줄거리들을 잘 관리하기만 하면, 우리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먹거리와 나무그늘을 제공하여 주는 게 아닌가. 지역사회가 가진 갈등의 요소들을 찬찬히 잘 들여다 보아, 사안의 당사자들 모두에게 덕이 되고 득이 되는 해결책을 찾아내는 지혜를 발휘하였으면 한다. 당장은 길이 보이지 않는 듯 하지만, 우리는 이미 수많은 난관과 과제들을 헤쳐오지 않았는가. 지역은 이들 갈등을 딛고 일어서 지역과 시민사회가 더욱 자라나고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지역은 좌절과 비난 속에 머물 수 없으며, 우리는 용기와 기대를 안고 일어서야 한다. 갈등은 기회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