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동 규

그래도 열 손가락으로 헷갈리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 세다 세상 뜬다는 것

얼마나 자지러진 휘모리인가

나무 갓 뜬 노랑 은행잎이 사람과 차 발에 밟히기 전

바람 속 어디론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간다는 것!

갑자기 환해진 가을 하늘

철근들 구부정하게 비죽비죽 서있는

정신의 신경과 신경 사이로 온통 들이비쳐

잠시 아무것도 부끄럽지 않고

길 건너려다 말고

벗은 몸처럼 서 있어도 홀가분할 때

땅에 닿으려다 문득 성숙한 노랑나비로 날아올라

막 헤어진 가지 되붙들까 머뭇대다

머뭇대다 손 털고 날아가는

저 훤한 휘모리, 저 노래!

바람에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을 바라보며 시인은 삶의 무게를 벗는 홀가분함 같은 것을 느끼고 있음을 본다. 살아오는 동안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관계를 유지하고 밀도 있으나 무겁고 피곤했던 시간들에 받은 중압감을 느끼고, 떨어져 딩구는 은행잎을 바라보며 생의 무게를 내려놓는 홀가분함을 경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