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제출(5월24일) 111일 만에 국회에서 부결됐다. 출석 국회의원 293명 가운데 찬성 145표, 반대 145표로 가부(可否) 동수였지만 과반수(147표)엔 2표 모자랐다. 무효가 2표, 기권이 1표였다. 헌재소장 임명동의 사상 유례가 없는 이번 사태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높은 국정 지지율을 방패삼아 달음질쳐온 민주당 정권의 독주에 처음으로 제동이 걸린 변곡점이다.

김이수 후보자 부결사태는 진보성향 일색의 사법 수뇌부 코드인사로 인한 여론 악화를 원인으로 꼽아야 한다. `주식 대박` 의혹으로 사퇴한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민변 출신이고,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편향된 사법부 인사가 엄정해야 할 사법마저 `정치화`하려는 의도로 읽히면서 거부감이 형성됐다.

이 시점에,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8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뒷배삼아 지속해온 견제 없는 질주를 반추할 필요가 있다. 좋든 싫든 여소야대 국회와 3년을 함께 가야 할 정권임에도 `직접민주주의`까지 거론하며 의회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국회에서 야권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일자리·탈원전·문재인 케어·언론개혁 등 100대 국정과제는 물론 외교안보와 민생경제 등 현안까지 줄줄이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간과한 결과다.

이번 사태를 놓고 청와대가 “무책임의 극치, 반대를 위한 반대”라며 핏대를 세우고, 집권당 대표가 “탄핵 보복, 정권교체 불복”이라고 분풀이를 하는 것은 현명치 못한 대응이다. 여유로운 자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문제를 풀어내는 비법이라는 지혜를 망각한 행태다. 자신들이 하면 선(善), 상대방이 하면 악(惡)이란 이분법을 버리고 야권을 진정한 국정의 파트너로 존중하는 자세 외에는 길이 없다.

국민들은 지난 5월 9일 대통령선거일 자정무렵 당시 문재인 당선인이 서울 광화문에서 “내일부터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국민통합 의지를 내비치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한다. 문 당선인은 함께 경쟁한 각 당 후보들을 향해서도 “함께 손잡고 미래를 위해 같이 전진하겠다”며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도 섬기는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거듭 다짐했었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사태는 민주국가의 `3권 분립`과 `사법부 독립성`이라는 훼손할 수 없는 가치를 일깨운 사건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야권의 지리멸렬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치솟아 오른 `지지율`에 취해 오만에 빠진 허물은 없는지 되새겨야 한다. `협치`로 국정을 풀어가겠다는 다짐, 지지하지 않은 분들도 섬기겠다는 `통합`의 초심을 되찾아야 한다. `보여주기` 식이 아닌,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난제들을 하나씩 풀어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