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대중의 뇌리에서 까마득히 잊혔지만, 한중관계에서 가장 참혹했던 중국의 횡포와 만행은 정묘·병자호란 때 벌어진 포로에 얽힌 역사다. 병자호란(1636) 당시 청국은 전후 처리를 통한 조선인 포로들의 경제적 가치를 더 중시해 대대적인 포로 사냥에 골몰했다. 최명길의 보고문에 의하면, 처참하게 끌려간 남녀 백성들은 무려 당시 총인구의 10분의 1인 50만 명에 달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심양으로 잡혀간 조선 여인들 중 많은 수가 청군 장수의 첩이 되어 만주족 본처의 악랄한 투기(妬忌)에 희생됐다. 조선 여인의 얼굴에 끓는 물을 퍼붓거나 혹독한 고문을 서슴지 않는 악독한 본처도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엄청난 몸값을 주고 돌아온 속환녀(贖還女)들은 실절(失節)했다는 이유로 다시 대문 밖으로 내쳐졌다. 따지고 보면 당시 조선 여성들을 짓밟은 청군의 끔찍한 만행은 일제의 종군위안부 참상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중국이 이성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은 관영 언론을 통해 우리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4기 임시배치에 대해 천박한 용어를 총동원해 공세를 펼치고 있다. 중국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온 환구시보를 비롯한 관영매체들은 `악성종양`, `강대국에 낀 개구리밥(부평초) 신세`, `2차 한반도 전쟁의 순장물`이라는 등 온갖 멸시와 모욕과 악담을 있는 대로 다 퍼붓고 있다.

`개구리밥`이라는 조롱이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어쩌면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적확하게 찌른 셈이기도 해서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치욕스럽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일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국을 마치 제후국처럼 거론한 적이 있다. 입줄에 올리기 싫지만, 중국을 `상국(上國)`이라고 받들어 모시면서 시시때때 금품과 병력과 여성들을 바쳐 온존을 구걸해온 장구한 역사는 엄존한다.

애걸이든 아첨이든, 주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나라의 모습을 용케 유지해온 역사가 무가치하다는 말은 아니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온 백성이 참살을 당할지도 모를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서도 한 줌 권력욕에 취해 파쟁(派爭)을 그치지 않았던 졸장부들의 숱한 분열상이다. 무명조개의 속살만 탐하는 도요새, 도요새의 부리를 물고 놔주지 않다가 함께 어부에게 잡혀먹히고 마는 아둔한 조가비의 모습 딱 그 꼴이었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정세를 살펴보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실감난다. 병자호란을 전후해 국제정세에 어둡기 짝이 없는 청맹과니 대신들이 친명파(親明派)와 친청파(親淸派)로 나뉘어 다투던 그 모습이 명찰만 바뀌어 재연되는 느낌이다. 온 겨레가 핵폭탄 인질이 된 시점에도 머리를 맞대고 살길을 모색하기는커녕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길 궁리에만 빠진 여야 정치권의 행태가 참괴한 역사의 데자뷔(旣視感)로 다가온다.

여당과 진보세력들은 북한의 핵개발 완성으로 골동품이 되고 만 `한반도 비핵화` `운전자론` 같은 헛소리를 걷어치워야 한다. 사드 임시배치를 두고 `공약위반`이나 `배신`을 부르대려면 북핵 위기에 대한 딱 부러지는 해법부터 내놓는 것이 순서다. 북한의 핵 공갈이 목전에 다다른 지금 우리는 체질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사방 적들로 둘러싸인 악조건에서도 똘똘 뭉쳐 사즉생의 자세로 강국을 유지하는 이스라엘의 결기를 조금이라도 따라 배워야 한다.

대한민국을 `개구리밥`쯤으로 여기는 중국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피를 토해도 시원찮을 치욕의 역사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 나라가 결딴날 지도 모를 절박한 상황 앞에서까지 비겁하게 분열하는 습성부터 제발 고쳐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길 `핵무장`을 놓고 왈가왈부 다투는 모습부터 일신해야 한다. `힘`이 뒷받침 되지 않는 `대화`요구는 오직 `애원`으로 들릴 따름이라는 진실을 부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