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기정진(1798~1879) 선생의 `노사집`에 안윤극이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글의 서두에서 이른바 책기(責己)의 자세를 강조한 구절이 적혀있다. `성인의 도는 자기를 탓할지언정 남을 탓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애써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십상인데 노사선생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돌아보고 책임질 수 있어야 이른바 전인으로서의 인격체를 실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스스로를 책망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러한 책기를 나름대로 잘 실천해 나아갈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있다. 중국 송나라의 학자인 충선공 범순인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몹시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을 탓하는 데에는 명석하고,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용서하는 데에는 흐리멍덩한 법이다. 너희가 다만 항상 남을 탓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탓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다면 성현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전통사회의 임금들은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면 수라상에 올라가는 반찬의 가짓수를 줄여가며 스스로 근신했다. 이는 단순히 겉으로 반찬 몇 가지를 덜 먹는 행위에만 그친 게 아니라 천재지변은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임에도 임금은 그것이 자신이 부덕해서 발생한 소치로 돌리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근심하고 반성한 것이다. 이는 곧 지난 사회의 임금들이 책기를 실천한 자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정치권력과 언론을 비롯한 우리 사회 기득권층들은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주창해왔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고 나라의 경제규모만 커지면 마치 선진국인 것처럼 환상을 불어 넣어온 반면, 역사와 전통에 근거한 공동체 규범과 정체성이 무너지고 짓밟히는 실태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무시해 왔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정당한 절차와 과정은 오히려 비효율적이고 사치스러워졌다. `목적만 달성하면 사후에 얼마든지 정당성을 인정받는데 무엇 때문에 번거롭게 절차와 수단을 지키느냐.`의 생각이 지배적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면 그것이 정당화되었던 해방 이래 한국사회의 `성공 방정식`은 불행히도 지금까지 고착된 채 현재진행형이다.

대표적인 표본이 정치권이다. 여야가 바뀐 지금의 정치상황에서 국가비전과 정치철학 없는 각 정당의 정치행태는 토씨하나 행동 하나 틀리지 않게 상대 당의 언행을`한풀이`하듯 그대로 풀어내고 있다. 겉으로는 좌나 우, 보수와 진보를 외치는 정치권은 결국 자신과 가족의 영화와 생존이라는 절박한 이름 아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탈법, 또는 불법이나 위법, 초법적인 일탈 행위도 서슴지 않으며, 이러한 물신주의와 출세지상주의는 곧 한국 정치인들의 가치관이 됐다. 이러한 역사와 관행이 쌓이고 국민을 앞세워 개인이나 패거리들의 영욕을 공익으로 포장한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위정자들이 득실거릴 때 우리는 결국 국가의 존폐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백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후기는 107년 전 8월 29일 `경술국치`라는 국권이 찬탈당하는 치욕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듯 과거의 패악적인 정치 갈등으로 인해 국가가 소멸되는 상황까지 온다는 결과를 기억한다면, 공직자들은 자신을 냉철히 분석하여 그 자리가 국민 앞에 부끄러우면 내려놔야 할 것이다. 자신을 속이며 남을 탓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쉽게 할 수 있다. 내 눈앞의 남을 바라보듯이,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비추어 보면 감춰진 자신을 모두 볼 수 있다. 이렇듯 남을 보는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스스로의 잘못을 직관하고 고쳐나간다면 책기라는 덕목을 보다 쉽게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