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신용목 지음·창비 펴냄시집·8천원

“21세기 서정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작가”로 평가받는 시인 신용목(43)이 `아무 날의 도시` 이후 5년 만에 새로운 노래로 독자들과 만났다.

시어의 사용은 더욱 노련해졌고, 세상과 인간을 해석하는 촉수는 보다 민감해졌다. 시집 제목부터가 자아와 존재에 관한 불혹의 성찰이 느껴진다. 이름하여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창비).

신용목 씨가 20대 후반일 때부터 곁에서 지켜본 기자로선 이 시집을 `절차탁마 끝에 이룬 미학적 성취`라고 부를 수밖에 없을 듯하다. 다소 단정적이고 과도한 칭찬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천만에다. 아래와 같은 시를 읽어보자.

`잤던 잠을 또 잤다//모래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잠이었다//누구의 이름이든/부르면/그가 나타날 것 같은 모래밭이었다. 잠은 어떻게 그 많은 모래를 다 옮겨왔을까?`

-위의 책 중 `모래시계` 일부.

고래로부터 시인이란 혜안(慧眼)을 가진 사람을 지칭했다. 혜안이란 세상사와 인간의 본질을 명확히 해석할 수 있는 식견을 의미한다. 신용목의 혜안은 `나`와 `누구`가 결국은 동질이형(同質異形)의 존재라는 걸 깨닫고, `누군가를 부르는` 호명이 자신을 찾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낮은 어조로 노래한다.

이러한 높은 차원의 깨달음이 있기까지는 아래 인용하는 시 `자작나무`에 등장하는 형이상학적 질문이 있었을 것이 분명할 터.

`질문이 적힌 종이를 구겨 던진 구름들, 천둥으로 번개로 쏟아지던 활자들/그때 겨울이 왔고//눈이 내렸다. 허공의 젖은 소매에 부딪쳐 반짝이며/흩어지며/생의 비밀을 잃어버린 사금파리처럼/한순간/깊은 동맥을 그으며…`

이미 눈 밝은 독자들은 짐작했겠지만 찰나에 진리를 포착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시인이라 할지라도.

신용목 또한 오늘이 있기까지 `생의 비밀을 잃어버린 사금파리`처럼 파랗게 추운 시간을 지나왔음이 분명하다. 해서 이 시는 내밀한 자기고백으로 읽힌다.

신용목의 신작 시집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은 `마흔셋에 발견한 생의 비밀`로 요약될 수 있다.

쏟아지는 질문 속에 혜안을 찾아가는 험한 길을 걸어 시인은 마침내 이런 경지에 도달한다. `옆집 남자`에서 읽히는 존재와 본질에 관한 명료한 인식. 이를 `진리와 자아의 발견` 외에 어떤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 신용목 시인
▲ 신용목 시인

`사막 가운데서도/선인장은 물속에 잠겨 있다//땅에 떨어져도/새의 뼈가 비어 있는 것처럼. 죽어서 새는 땅속으로 하늘을 가져간다/어둠/끝이 보이지 않는 것과 끝이 없는 것은 같은 말이다/밤….`

선배시인 허수경은 신용목의 시적 성취를 두고 “시집의 시간을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살게 한다”고 말했다. 보기 드문 상찬이다.

문학평론가 김나영 역시 “불가능한 자기증명에 대한 고투가 이토록 담담하게 `나`를 돌아보는 일로 그려지기도 한다. 신용목의 시는 차마 경계 지을 수 없는 인간이라는 보편적 사정을 한 철저한 개인의 반성을 통해 그려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말로 신용목의 시적 미래를 격려했다.

1974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난 신용목 시인은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공부했고, 2000년 문예지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이후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제2회 시작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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