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희수필가
그림 한 장을 들고 내연산에 오른다. 겸재의 `내연삼용추`를 직접 만나기 위해서다. 내연산은 온통 돌산이다. 잘 다듬어진 등산로에도, 물이 타고 흐르는 계곡에도 제각각의 바위와 자갈로 채워져 있다. 그 옛날 험한 길을 청하의 현감이었던 겸재는 가마를 타고 올랐다고 한다. 가마꾼들은 다름 아닌 보경사의 스님들이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이양반 저양반이 하도 자주 가마질을 시키니 스님들로서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지체도 그리 높지 않은 성미 고약한 양반들이 하는 짓이 볼썽사나워, 태우고 가던 스님들이 우연을 가장해 가마를 뒤집어 혼을 내주었다고 한다. 나는 겸재같은 호사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니 아픈 무릎을 달래가며 천천히 다시 산을 오른다.

흐르는 물소리에 취해 오르다 보니 어느새 관음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폭포아래는 너럭바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물길을 돌리고 있다. 산에 오르던 사람들이 그림 속에 선비들 마냥 바위에 둘러앉아 일행들과 음식을 나누고 있다.

여기쯤일까 싶어 그림을 다시 펼친다. 내연삼용추는 겸재가 청하 현감으로 있을 때 그린 여러 장의 그림 중 하나이다. 학소대 위로 계조암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로 세 개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삼용추는 잠용폭포, 관음폭포, 연산폭포를 아우르는 말이다. 관음폭포 곁으로 쏟아지는 소 옆에 경치를 감상하는 세 명의 선비와 그 수행원들이 그려져 있다. 그 뒤로 사다리가 놓여 있어 그 당시 정선도 연산폭포를 구경하기 위해 가파른 절벽을 올랐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한다.

실제로 관음폭포 위로 그림 속 사다리를 닮은 계단이 있고 그 끝에 구름다리가 보인다. 연산폭포는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소리가 먼저 내 몸을 덮친다. 발걸음이 그 기에 눌려 조심스럽다. 폭포아래 서자 서늘한 기운이 바람을 일으킨다. 한참동안 그 아래서 가만히 물보라를 맞는다.

고찰 보경사를 품고 있는 내연산은 경치가 수려해 예로부터 많은 이들이 찾는 명승지였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며 관광객들이 셔터를 누르듯 옛 사람들도 너나없이 석공들을 데려와 바위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그 앞에서 우리도 한 장의 사진을 찍는다.

이제 정선이 앉아서 그림을 그렸을 만한 자리가 어디인지 찾아야 한다. 세 개의 폭포가 보이는 곳이니 반대편 바위일 것으로 짐작하고 그 주변을 살펴 자리를 잡는다. 겸재 특유의 도끼로 찍은듯한 강렬한 필법이 돋보이는 맨 아래 잠룡폭포와 그 위에 너럭바위, 소 밑에 사람들, 그 위로 관음폭포와 구름다리가 눈앞에 펼쳐진 경치와 어쩌면 이렇게 일치하는가.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진경산수화답게 모든 것이 손에 든 그림과 같은 자리에 앉았지만 절벽에 가린 연산폭포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 그 세월 동안 폭포의 물길이 바뀐 것인가. 조금씩 자리를 바꿔 보아도 두 개의 폭포만 보일 뿐 삼용추 중에 제일로 꼽는 맨 위의 연산폭포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중국의 화첩을 보고 그리던 화보모방주의시절, 겸재는 명승지를 직접 답사하고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렸다. 어떤 방면에서 무언가 처음 시도한다는 것은 기술을 넘어서는 눈을 가져야 가능해진다. 그는 눈으로만 경치를 감상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내연산을 그린 것이 아닐까. 절벽 뒤에 숨은 연산폭포까지 보이도록 구도를 잡아야 내연산의 진짜 절경을 담을 수 있기에 내연삼용추가 가능한 것이다.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는 연산폭포를 눈에 보이도록 옮겨 그린 것은 보는 이의 눈과 가슴을 압도하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사실(寫實)에서 사의(寫意)로의 대전환이었다.

가만히 겸재가 머문 자리에서 눈을 감는다. 삼용추 아래에서 분위기에 따라 깊이와 폭을 달리한 폭포의 연주가 울려 퍼진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