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규열<br /><br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발전과 성장을 거듭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어두운 그늘과 어려운 이웃들은 우리들 곁에 늘 존재하고 있다. 북한이 우리에게 드리우는 핵 위험의 그림자가 우리는 물론 한반도 주변의 정세마저 어지럽게 하고 있어 나라와 국민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대처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깊숙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멀스멀 벌어지는 힘들고 어려운 사건들 또한 소식을 접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매우 힘들게 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할 것인가는 거대담론의 공론화와 더불어 이 나라의 건강을 회복함에 있어 매우 긴급을 요하는 사회적 과제인 것이다.

최근 학교 폭력 또는 십대 폭력이 그 하나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언론을 통하여 전해지는 그 내용들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어서, 동료 학우들을 향한 이 같은 폭력행태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도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제시하는 목소리가 그리 들리지 않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언론이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소식들은 대개 이렇게 충격적이며 파괴적이거나 눈물과 한숨을 자아내는 기사들인 것이다. 이를 언론의 속성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언론의 역할이 `전달`에 그쳐야만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처럼 어둡고 힘든 뉴스들을 끊임없이 접한 시민들은 이 같은 소식들을 너무 흔하게 들었던 나머지 오히려 문제들에 대해 둔감해 지고 전해지는 이야기들에 오히려 등을 돌리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안전불감증`도 이런 현상의 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언론이 하는 일은 물론 소식을 전하는 일이다. 그렇게 여러 소식들에 대해서 알게 된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자유롭게 그리고 만족스럽게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일만 하는 가운데 여러 사회문제들의 본질과 해결책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민의식을 충분히 일깨우지 못한다면 언론은 그 해야 할 역할을 절반 정도만 성취하는 것이 아닐까.

최근에 미국 언론계에는 언론이 `해결책언론(Solutions Journalism)`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즉, 뉴스를 접하는 시민들이 소식들이 전하는 과제에 어떻게 반응하여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역할까지 언론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스가 전하는 갈등과 고통을 보여주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이들 상황과 문제들을 시민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반응하며 해결하는 방법까지도 궁리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대중이 보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사안들에 반응하며 스스로 행동하게 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게 되면, 언론이 구현하고자 했던 민주주의 즉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사회`에 더욱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문제가 복잡하고 그 해결책이 어려워 보일수록 언론의 역할이 크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들을 접하고 바라보는 시민들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언제까지 들려오는 소식들에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고 혀만 끌끌 찰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조금만 생각하면 곧 나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이다. 시민들도 이제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들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사는 백성들이 돼야 한다. 그래서 보다 성숙한 시민사회, 민주사회를 시민들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를 그 누구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만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해 주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민들이 돼야 하는 것이다.

십대 폭력도 북핵 문제도 이들 뉴스를 접하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 깊어지고 적절하게 반응할 때에야 조금씩 분명하게 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을 어떻게 남들이 바꾸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