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성모병원 산부인과 김도균 주임과장의 진료실 이야기

타지역에서 내원한 환자 2명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47세의 A 환자는 우측 골반 통증과 양측 다리 저림으로 지난 7년간 전국의 유명 산부인과와 척추 전문병원, 한의원 등을 찾아다녔다. MRI검사까지 각종 진료를 받아봤지만 진단 결과는 항상 `산부인과적 문제는 없다`였다.

척추 전문병원과 한의원에서의 치료 효과는 일시적이었다. 의사조차 답답해하며 말했다. “자궁을 제거해볼까요? 그럼 생리통도 없어지고 골반통, 다리 저림까지 없어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아닐 수도 있습니다.”

A씨는 불안한 마음을 좀처럼 진정시킬 수 없었다고 했다.

신경외과에서는 요추 디스크 주사치료를 받았지만 도무지 의학적인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고통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잠 못 드는 날이 많아졌다고.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의 아침밥을 차려주는 일조차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몇 달간 인터넷을 뒤지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알아보던 중 내가 쓴 칼럼을 읽고서야 `심부 자궁내막증, 바로 이 병이구나` 싶었다고 했다. 곧장 기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 병원으로 왔다.

골반과 자궁을 중심으로 정밀 검사를 해보니 우측 자궁천골 인대가 엄지손가락 크기만큼 커져 있었다. 직장과 자궁 사이의 유착도 있었다.

복강경으로 심부 자궁내막증 병변이 있는 골반의 자궁과 직장 사이 병변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자고 제안했다. 일주일 전 A 환자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다음날, 그동안 자신을 `죽일 듯이` 괴롭히던 골반통과 다리 저림이 사라졌다.

환자는 며칠간 말이 없었다. 퇴원하기 전에 수술장면을 보여줬다. “왜 그동안 몰랐을까요?” 환자의 볼에 눈물이 흘렀다.

30대 B 환자는 난소자궁내막종으로 이미 서울에서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수술 뒤에도 생리통과 골반통, 요통, 다리 저림, 밑이 빠지는 통증, 배변통, 성교통은 오히려 나빠졌다. 다니던 직장은 생리와 상관없이 심해지는 골반통 때문에 그만뒀다.

B씨 또한 심부 자궁내막증을 소개한 칼럼을 보고 전라도에서 멀리 포항까지 달려왔다.

MRI검사 결과 병변이 직장 벽을 관통해 변비, 배변통까지 심한 상태였다.

환자의 골반 속은 그간 경험한 환자들 중 `최악`이었다. 직장전벽에 4cm 정도 병변이 차지하고 있었고, 요관 혈관 신경 자궁경부 후벽 직장이 모두 엉킨 상태였다. 오랜 기간 골반 수술만 해왔지만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정상 조직에서부터 시작해 병변이 있는 심한 유착 부위로 각각의 장기들을 안전하게 분리하면서 수술을 진행했다. 심부 자궁내막증이 있는 자궁과 직장 사이 깊은 곳에 다다르기까지 2시간이 걸렸다.

골반의 신경, 요관, 혈관 등을 안전하게 박리해 제거하고 심부 자궁내막증 병변과 유착된 직장 신경 혈관 요관도 다시 떼어내기를 반복했다. 직장 병변까지 제거한 후 5시간가량의 수술이 끝나고 환자는 병실로 옮겨졌다.

A씨와 B 환자처럼 요즘 찾아오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골반통, 요통, 생리통, 다리 저림, 배변통을 주된 증상으로 호소한다. 물론 환자 모두가 심부 자궁내막증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당수가 심부 자궁내막증으로 진단된다. 재발된 자궁내막증 환자 대부분은 난소 자궁내막종만 수술하고 자궁 후벽과 직장 사이 심한 유착을 일으킨 심부 자궁내막증은 치료하지 않은 채 마무리 한 경우였다.

의학의 길로 들어선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난소 외 다른 골반에 위치한 심부 자궁내막증을 제대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곳이 국내에 흔치 않다.

도자기를 만드는 일은 장인의 손길이 어떠한가에 따라 훌륭한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진단도 힘들고 치료도 어려운 심부 자궁내막증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남은 평생 도자기 만드는 장인의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