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용머리와 몸.
불이 났다.

불길은 남산의 이곳저곳을 태우면서 아름다운 나무와 풀과 꽃을 태우고 바위일부를 검게 그을렸다.

다행인 것은 산의 일부만 그렇게 하고 남산의 소중한 유적은 대부분 무사하다는 것이다. 1997년 2월20일 인근 배리 마을에서 농사일 하던 노인이 밭 뚝 태우다가 잠깐의 부주의로 해서 일어난 일이다.

이 불로 인하여 오랜 세월의 삭정이, 억새의 마른 대궁도 모두 타버렸다. 그 타버린 산의 색은 검은 숯으로 변해버렸으나 이러한 와중에서 아무도 모르고 지내오던 바위가 타버린 억새풀 찔레넝쿨 사이에서 한 점 드러났다.

남산정상에서 순환도로를 따라 연화대좌 쪽으로 가는 길은 당시엔 온통 타버린 나무의 열병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 한 6년여가 흐르면서 서서히 제 빛을 되찾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자연의 재생과 자정능력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엇이 있는 모양이다.

처음 남산에 들기 시작한 때, 신작로처럼 산을 가로지르던 순환도로가 오늘날에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이가 산을 즐기러 오게되면서 그 만큼 비좁게 되니 이미 산길로서의 효용은 잃어버렸다. 이 순환도로를 따라 금오산 정상을 지나 남산리 쪽으로 가면 고개가 있고, 고개를 넘으면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여기서 길 옆 오른편을 잘 보고 가자.

이 근방은 바위가 흔치 않은 곳이라 금방 눈에 띄는 큰 바위 한 점이 있다. 이무기의 머리이거나 거북의 머리만 따로 떼어다 놓은 것 같아서 지나는 이의 눈길을 끄는 바위이다.

파충류의 머리를 닮은 바위가 전면으로 주름과도 같이 균열과 굴곡이 있다.

앞부분엔 저절로 패인 선이 길게 나 있어서 그것의 입이 되었다. 그 입 꼬리 부분에 손을 대었다.

바위구멍을 새기면서 무언가를 나타낸 듯 하나 그것이 무엇을 구색하는 지는 알아보기 어렵다. 다만 그렇게 해 놓음으로서 입은 앙 다문 듯 다부진 느낌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보이라고 바위구멍을 새긴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오른 쪽 옆으로 두자 정도의 위치에 타원형의 쪼아놓은 흔적이 있어서 눈의 형용이 되었다. 이렇게 보았을 때 바위는 영락없는 구렁이의 머리가 되고 만다. 산의 구비에서 고개를 내밀고 무언가 응시하는 구렁이.

거대한 구렁이를 어른들은 용이라고 한다.

풍수 공부하는 이들은 산의 줄기를 용이라 하기도 한다. 이 바위가 용이라면, 그렇다면 그 용의 몸체도 근방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바위문화에는 상상을 필요로 하는 요소가 있다. 인간의 상상력만큼 이 세상에서 폭넓은 것을 담아내는 그릇이 또 있을까. 그래서 주변을 살피면 이놈의 몸체는 남산의 굽이진 어느 산줄기의 등성이 일 수도 있다. 아니면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용이거나 구렁이의 몸체를 닮은 비늘무늬 진, 이런 저런 바위가 용의 몸체를 형성하는지도 모른다. 오랜 영험이 있는 산이라서 그런 바위는 남산의 도처에 있다. 여기 저기 산재한 바위가 서로 연결되어 충분히 길어진다면 몸체로 형성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이어진 사이와 사이의 간격은 수풀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생각되어도 좋고, 구름이거나 혹은 그가 토해놓은 안개 속에 잠긴 부분이라고 마음에 스스로 그려 넣어도 즐거움이 있다.

옛날 선조님들의 미의식의 체계에는 그렇게 자연까지도 품에 안아 엮어내는 배포가 넉넉하였다.

그 배포만큼 커지는 용이 남산을 감싸안고 서라벌을 본다.

<이하우 암각화 연구가>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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