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
▲ 배개화 단국대 교수

필자는 지난해 12월 중순 신축 아파트에 입주했다. 필자에게는 생애 최초의 주택인데, 앞의 주차장이 있는 동의 2층이다. 다른 아파트에도 계속 분양신청을 했지만 떨어진 탓에 이것도 운이 좋은 거라며 필자는 계약을 했다. 이후 내 집이다보니 관심이 생겨서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아파트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가끔 게시글들을 보곤 한다. 필자도 소위 커뮤니티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입주 전에는 입주준비위원회라는 것이 만들어져서, 이 조직을 중심으로 아파트 건설과 관련된 입주자들의 민원이 많이 해결됐다. 대표적인 해결 사례는 1, 2, 3층의 방화문이 플라스틱에서 철제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잘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은 아파트 이름을 새긴 돌을 설치하는 것이 문제를 일으켰다. 이것이 뒤에 있는 저층 세대의 조망권을 방해한다고 해서 입주예정자가 항의를 하여 다른 입주민들의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살아보기 전에는 잘 모른다고, 입주 후에 점점 더 큰 문제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몇 달 전에는 주차장 문제로 커뮤니티 전체가 몸살을 알았다. 지금은 쓰레기장 문제로 커뮤니티에서 논쟁이 심하다. 필자가 살고 있는 동은 앞뒤로 쓰레기장이 두 개나 설치돼 있다. 1층 세대의 경우는 쓰레기장이 자녀 방의 창문 앞쪽에 있어서, 입주 초기부터 계속 문제제기를 해왔다.

그런데 2주전에 앞 베란다 쪽에 설치된 쓰레기장을 폐쇄하고 철거를 할지 주민 투표를 한다는 입주자대표자협의회의 공고문이 각 동에 붙었다. 아래층의 부인이 시공사 측에 민원을 넣어서 설계 잘못이기 때문에 이전 및 폐쇄에 따른 비용을 모두 부담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 분이 입주자대표자협의회의 입주자총회에 안건을 상정시켜, 쓰레기장 철거에 대한 주민 투표를 실시한다고 의결이 됐다.

이 공고문이 붙은 후에 해당 쓰레기장을 사용하는 동의 특정 라인 주민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항의 글을 쓰고 항의를 심하게 했다. 필자도 폐쇄가 좋지 않을까라는 댓글을 달았다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욕을 먹었다.

우리 아파트 사례를 보면 사람들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 중에서 온라인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표성을 갖는 공식 의결기구는 오프라인 모임인 입주자총회이다. 이것은 매달 두 번째, 네 번째 목요일 저녁에 열린다. 여기는 회장이나 각 동의 동장 등의 임원과 아파트 일에 관심이 많은 부녀회원 그리고 일부 주민들이 모인다. 이곳에서 여러 가지 현안이 논의되고 의결된다. 물론 필자는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다.

그런데 주차장이나 쓰레기장과 같이 다수의 이해가 얽혀있는 것에 대한 의결 결과가 공고되면 온라인 커뮤니티가 매우 시끄러워진다. 왜 본인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일이 의결됐느냐는 성토가 빗발친다. 입대위의 입장은 입주자 총회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니 총회에 참석해서 자신의 의사를 밝히라는 것이다.

현재 문제의 쓰레기장 폐쇄에 대한 주민투표는 중지됐다고 한다. 폐쇄로 다른 동 쓰레기장을 이용해야 하는 해당 동의 특정 라인 주민들이 `호소문`을 돌리는 등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분들은 처음에는 쓰레기장 이전을 대안으로 이야기했었지만, 분위기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해서인지 지금은 쓰레기장의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총회가 결과만 공유될 뿐, 안건, 회의 내용 그리고 의결 사항 등이 주민들에게 공유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투표도 총회에 참석한 사람들만 하다 보니 다른 세대원들은 자기도 모른 채 일이 결정됐다는 불만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투표까지 해서 뽑은 대표기구의 의결사항을 힘으로 무력화시키는 것도 너무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 아파트는 지금 `민주주의`의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