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종철
새벽잠을 깨워, 양손에 옷 보따리 들고, 엄마는 길을 재촉하셨다.

택시는 엄두도 못 낼 시절이라, 새벽길을 삼십분 걸어서 버스를 탔고, 마침내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차라고 해 봐야 하루에 한 번 뿐.

그거 놓치면 다음 날 올라가야 했다. 아들을 보내는 아침인데도, 제대로 따뜻한 밥도 못해 먹이고 급히 기차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야만 했던 것을 엄마는 후회했다. ‘밥이나 먹여서 데려올걸.

‘엄마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보따리를 건네면서도 엄마는 끝내 무어라 한마디 못하고 그저 내 손만 꼭 잡았다.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서고, 아들이 어둠만큼이나 시커먼 기차 속으로 빨려 들어간 후에도, 엄마는 내 얼굴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차창에 붙어 떨어지질 못했다. 기적이 울리고 기차가 움직이자, 엄마는 여명의 어둠을 틈타 용감하게 손을 흔들었다. 끝내는 온 얼굴에 울음과 눈물이 범벅된 채, 부끄러움 잊은 채, 인형처럼 자동적으로 계속 손만 흔들었다. 잘 가라는 말도 못하고, 차 조심하라는 당부도 없이, 그저 울기만 하셨다. 무심한 기차는 눈물을 뿌리친 채 내달렸다. 그 자리에서 우뚝 선 엄마가 조그만 점이 되고, 마침내 기차역도 작은 점이 되고, 언덕과 논밭이 빠르게 휙휙 지나간 다음에야, 나는 엄마의 흔드는 손을 잊고 잠에 빠져들었다. 예전의 울 엄마는 그렇게 나를 떠나보냈다.

그렇게 시작된 이별 연습엔 항상 눈물이 따랐다.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 올라만 가도 붙들고 울었다.

입대할 때는 눈물이 그치질 않아, 같이 기차를 타고 갔다. 혼자 지내는 내내 엄마의 눈물어린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고, 엄마에게 돌아오는 순간까지 유혹의 늪에 빠지지 않게 나를 지켜 주었다. 울 엄마의 눈물은 그만한 중량의 어떠한 보석보다 값진 보배로운 것이었다. 그게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데, 내겐 그저 엊그제 일처럼 늘 마음에 남아있다. 엄마가 생각나면, 나는 일부러 공항엘 간다. 그것도 국제선 청사에. 그기에 가면, 눈물 뿌리며 이별을 아쉬워하는 부모와 자식들이 자주 목격된다. 이별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온다. 만났으니 헤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인 것을. 어차피 헤어짐을 막을 수 없다면, 눈물로 보상받으려는 듯이 그들은 울면서 헤어진다. 나를 지켜주던 엄마의 눈물이 가끔 생각나면, 그렇게 이별 장소를 택하여 이별의 장면을 보러 나간다. 정작, 울 엄마 마지막 떠나는 순간에 내가 곁을 지키며 눈물흘리지 못했음을 평생토록 후회하며 사죄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본다. 어제 내 자식도 대학 공부한다고 멀리 떠났다. 모처럼, 나도 엄마처럼 울어볼까 했는데, 눈물이 나질 않았다. 엄마가 나를 위해 흘린 눈물만큼 나도 내 자식을 위해 눈물 흘릴 수 있어야 했건만. 녀석들의 자취방까지 짐을 다 날라주고 헤어졌으니 이별의 장면에 맞추어 눈물 흘릴 시간이 없었다. 아내는 돌아오는 내내 침묵으로 이별의 순간을 이겨냈다. 그런 줄 알았는데, 현관문을 열고 집을 들어서자마자, 전화기를 들고 아들에게 전화를 한다. 용감한 척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울먹이는 목소리로 변한다. 녀석도 그만 숙연해진다. 그렇다. 이별할 땐 울어야 제 맛이다. 눈물의 힘은 어떠한 웅변이나 대화보다도 강하다. 눈물은 내 아들을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될 것이다. 눈물은 아이를 지켜내는 충분한 마법의 힘이 있다. 울 엄마처럼 내 아내도 이젠 그런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본다.

<김종철 시인 약력>

1955년 성주 출생

문예한국(1996) 여름호로 등단

포항문인협회원, 포항제철중 교사

    윤희정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