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탑골의 큰 바위얼굴
탑 골은 경주 남산의 북쪽 끄트머리에 붙은 동네이다. 마을 뒤 구릉에 서 있는 삼층탑에서 얻은 지명이다.

이곳에 ‘남산탑골마애조상군’으로 불리는 유적이 있으니, 보물 201호로 보호되고 있는 아름다운 통일신라의 암벽조각이다. 높이 11m 길이 20여m의 거대한 바위 네 면에는 각기 방위에 따라 부처님과 보살님 공양하는 스님의 상을 새기고 보리수나 용화수와 같은 나무도 돋아 나오게 새겨 두었다. 거기에 더 보태어 비천상, 사자상, 7층탑, 9층탑을 같은 면이나 다른 바위의 단애에 새긴 것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탑 골에 이렇게 부처님의 세계만 가득하다면 우리는 장엄(莊嚴)이 부담스러워 오래 편하게 머물지 못할 지도 모른다.

이내 부처님들이 품어내는 기에 질려 버린다. 하나, 탑 골에서는 그렇지만은 않기에 전부터 찾고 또 찾아도 마음 편하게 한나절이나 반나절쯤 있다가 내려올 수 있는 맘 편한 곳이란다.

그곳에는 우리가 오래 잊고 지내오던, 또 다른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삼존불로 모셔진 부처님이 있다. 그 부처님이 앉으신 바위 뭉치를 끼고 오른쪽으로 가 보라. 좁게 바위사이로 난 길, 그 길이다. 그쪽으로 내려가면 선정에 든 스님도 보리수 아래 앉아 있고 불 삼존상, 비천상도 멋진 곳이다.

공간미가 썩 그만이다. 그리로 빠지는 길목에 서서 손에 닿는 바위를 볼 수 있다. 예사롭지 않은 그곳이다.

거기에 큰 바위얼굴이 있다.

낮추어야 볼 수 있다. 우리가 자세를 많이 낮추어 겸손해져야만 비로소 보이게 되는 위치이다.

겸손과 무심의 마음이 되면 껍질 속의 참모습이 보이게 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무심의 눈빛을 배우려면 더 많이 낮추어야 할 지도 모른다.

두 개의 바위가 서로 붙어있다.

수직으로 선 그 바위에, 앞쪽의 바위에 바위 얼굴은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있다.

높이 197㎝, 가로세로 200×55㎝의 바위 아래 부분이다.

이렇게도 천연스러운, 은은하게 눈, 코, 입이 선명한 얼굴이다.

인공? 인공의 흔적은 찾아내기 어렵다. 그만큼 쉽게 알아보기는 어렵게 손대었다. 어루만졌다는 표현이 더 나은 것 같다. 그리 자연스러운 손길이 남은 얼굴이다.

아마도 오래 전, 바위가 얼굴로 인식된 것이 우리의 기억이 측량키 어려운 훨씬 전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바위에 손길이 닿게된 일이, 바위를 아끼고 보호하고 기대어 살았던 적이.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고, 부도(佛徒)가 이 땅에 들어오고서야 부처의 상호임을 알아챈 누군가가 이마 위의 일정 부분을 두드려 나발로 보이게 하였다. 정을 댄 것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뺨 언저리를 만진 흔적도 언뜻 눈에 띤다.

경주 노천의 불상이 그렇듯 자연광의 그늘이 깊고 그윽한 눈을 그린다. 태양이 점안 한 것이다.

콧날이 반듯하게 아름답다. 그 콧날을 타고 넘어온 햇살에 뺨은 양감을 더하고 둥근 눈은 그윽하게 드러난다.

요즈음 같으면 아마 12시경의 측광이 비추일 때 그 모습은 가장 진솔하게 드러난다.

한반도를 범주에 넣는 동북아시아와 시베리아에는 자연은 그 지역을 주관하는 주인(Masters of nature)이 있다는 믿음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신령과 같은 개념이다. 대 자연이 바위에 숨결을 불어넣어 그 숨결에 생명 얻은 바위는 탑 골의 산과 들을 닮은 모습이다. 아마 이는 탑 골의 산천을 주관하는 신령의 모습이 현현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이름하여 탑 골의 주인.

그 님이 오늘 감모여재(感慕如在) 나투시길 바라던 우리들에게 겨울햇살의 홍조 띤 모습으로 여기, 이렇게 계신다.

<이하우 암각화 연구가>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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