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살로메
무삭제본 ‘안네의 일기’는 내가 아껴두고 읽는 책 중의 하나이다.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가짜 안네의 일기는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차별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원본의 많은 부분들이 삭제되어 있다.

무삭제본 그녀의 일기를 읽다 보면 과연 이 일기가 사춘기 소녀가 쓴 것이 맞나 하는 의문과 감탄이 동시에 인다. 다락방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이웃과 벌이는 적나라한 갈등은 차라리 인간적이다. 첫 사랑의 실체에 번민하는 장면은 유머러스하고 신선하기까지 하다. 나치의 인종대청소에 희생되지 않았더라면 안네는 더 큰 작가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최근에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다가 유대인 대학살이 파렴치한 돈벌이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헤친 한 신간서적을 보게 되었다. 그 용감한 안내서를 읽으면서 나는 나치 하에 희생당한 수많은 안네를 생각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를 부모로 둔 저자는 홀로코스트(대학살)가 대중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참을 수 없어 붓을 든 것처럼 보였다.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죽어 가는 동안 살아남은 자들은 오히려 홀로코스트를 떠들며 대중적인 돈벌이의 나르시즘에 빠져있다고 고발하고 있다. 그 초대형 돈벌이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유대인 엘리트 단체와 기관들이다. 그는 이것을 ‘홀로코스트 산업’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가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며 지낸 세월의 보상금은 단돈 몇 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희생자들의 이름으로 각종 위원회를 만든 유대인지도자들은 수십만 달러씩의 연봉을 챙겼다. 소위 홀로코스트 산업의 명예로운 갑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고발서를 보면서 요즘 사회면 뉴스를 장식하는 위안부 누드 파문이 떠오르는 것은 어인 일일까?

태평양의 팔라우 공화국, 그 역사적인 현장에서 그분들을 생각하면서 촬영 내내 눈물을 흘렸다는 누드 당사자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홀로코스트 산업의 변종이 한반도에도 상륙했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종군위반부 할머니들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프로젝트를 생각했다’ ‘수익금의 일부를 그분들을 위해서 쓰겠다’는 그들의 말을 아무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다.

이 영상물에 대한 비난 여론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다. 네티즌들도 각 이동통신사 홈페이지마다 항의의 글들을 올리고 있다. 다행히 이동통신회사들은 그 동영상 콘텐츠 서비스 계획을 포기할 것이라고 한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실체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가해국을 상대로 아직도 수많은 종군위안부들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단 한 번도 그분들의 아픔에 동참하지 않았을 그들이 어찌 ‘종군위안부를 테마로 한 누드영상’ 운운하는 기자회견을 자청할 수 있다는 말인가.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를 등에 업고 상업적 이익의 극대화를 노리는 면에서는 유대인 엘리트들의 홀로코스트 산업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웃의 아픔이 나의 돈벌이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것이 저 사회 밑바닥의 파렴치범에 의해서 행해지는 게 아니라, 사회를 이끌어 가는 엘리트 계층이나 대중예술에 종사하는 공인들이 자행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이 같은 사태를 하늘에서 지켜보는 안네는 어떤 일기를 쓸까? 유머 만점이었던 안네는 아마 이런 일기를 쓸 것이다.

‘돈이 그렇게 좋으세요? 이곳에서는 쓰레기보다 딱 한 단계 낮은 등급이 돈이랍니다.’

<김살로메 약력>

1965년 안동출생

경북대 불문학과 졸업

포항문학 소설 신인상 당선(2003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2004년)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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