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시인
▲ 이병철시인

메이웨더가 이겼다. 경기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 종합격투기 최강자이긴 하나 복싱 경력이 없는 맥그리거가 전설적인 챔프와 복싱 룰로 붙은 `미스 매치`다. 이 이벤트성 시합이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돈 잔치`가 된 것은 두 선수의 `개성` 덕분이다. 실력도 물론이지만 화려한 쇼맨십과 퍼포먼스, 서로를 향한 자극적인 도발이 분위기를 띄웠다. 둘의 개성을 극대화시켜 거기에 근사한 `스토리 라인`을 입힌 프로모터들 역시 대단하다.

자신을 `머니(Money)`라고 부르며 명품 시계와 슈퍼 카, 초호화 파티로 돈 자랑을 일삼는 메이웨더, 화려한 언변과 기행으로 상대를 도발하는 등 도무지 겸손을 찾아볼 수 없는 `떠벌이` 맥그리거. 둘 다 우리 정서에선 `비호감` 캐릭터다. 예의와 겸손, 착실함, 용모단정을 요구하는 “모난 돌 정 맞는”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종목 불문 우리나라에서 메이웨더나 맥그리거 같은 스타가 잘 나오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운동선수에게는 개성보다 실력이 중요하지만, 개성을 함께 쌓는다면 실력이 빛을 발할 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같은 실력이라면 개성 넘치는 선수보다 겸손하고 무난한 캐릭터의 손을 더 들어준다. 결국 협회 말을 잘 들어 통제하기 쉬운 선수들만 남는다. `무난함`을 중시하는 사회적 정서가 대중들에게 내면화된 탓이 크다. 운동뿐만이 아니라 웬만한 분야가 다 그렇고 문학도 마찬가지다. 엔터테인먼트는 엔터테이너 고유 영역으로만 여긴다. 어느 시인이 옷 잘 입고 타투 새겼다고 욕먹는 걸 들은 적 있다. 나도 부츠 신고 카우보이모자 쓴 채 시 낭송했다가 손가락질 받았다.

흰 색, 회색 차만 타고 다니는 몰개성과 획일화의 사회는 `도전`에 대해서도 인색하다. 다른 영역을 넘나드는 일이라면 더 그렇다. “모난 돌 정 맞는다”는 잔소리는 “주제와 분수를 알라”는 `꼰대질`로 이어진다. 매니 파퀴아오가 한국 복서였다면 한 체급 챔프는 되어도 8체급 석권의 위업은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실력 때문이 아니라 불안한 도전보다는 무난한 안주를 권하며 분수 파악을 강요하는 풍조 탓이다. 개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곧 개인의 취향과 판단, 선택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겸손의 미덕`을 말하는 선한 얼굴 뒤의 질투와 시기, 깎아내리려는 저열한 욕망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들을 제거해왔을까.

`메이맥`시합과 같은 날, 4체급을 석권한 푸에르토리코의 복싱 영웅 미구엘 코토와 일본의 카메가이 요시히로가 WBO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전을 벌였다. 코토가 3대0 판정으로 승리하며 오랜 공백을 깨고 챔피언에 등극했다. 일본 복서가 세계 타이틀 링에 오르는 건 흔한 광경이다. 10명이 넘는 세계 챔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 고라쿠엔 홀에서는 정기적으로 복싱 경기가 열리고, 사람들은 경기장을 찾아 응원한다. 집념과 집념, 인생과 인생이 맞부딪는 링을 향해 박수를 보낸다. 시합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 라인을 입혀 판매하는 탁월한 프로모션 덕분이다.

나이트클럽 전단지만큼 조악한 디자인에 선수보다 협찬사와 시의원 이름이 더 크게 실린 한국 복싱 경기 포스터를 보면서 `개성`과 `도전`의 중요성을 다시 느낀다. 오일장 약장수 쇼 같은 주먹구구에서 벗어나려면 협회나 후원사에 기죽지 않는 `개성파`들이 등장해야 한다. 그 캐릭터들에다 그럴싸한 `이야기`와 상품 `이미지`를 입혀줄 전문 경영인, 광고인, 영화인, 문학가 등의 힘도 빌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장르와 분야를 넘나드는 도전들이 보편화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메이맥` 같은 빅 이벤트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 없다. 그 한 경기가 몇 사람을 먹여 살릴까. 실력과 개성을 통한 도전, 그것을 매력적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일, 모난 돌이 정 맞지 않는 사회의 창조경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