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땀방울이 희망의 꽃으로 ③
새마을운동가 구술생애사 채록
박병군 전 구미시 새마을협의회장(下)

▲ 박병군 전 구미시 새마을 협의회장이 서재에 있는 상패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가난해도 희생정신 있었던 시절
이웃 위해 국가 위해 조금씩 양보
오늘날 이기심은 새마을정신 부재 탓
국민 개개인이 `지도자` 의식 가져야


△ 뒷받침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아줬으면

새마을일꾼으로 15년, 새마을문고 지도자로 5년을 하고 나서 진미동 새마을지도자를 시작했죠. 그때가 1990년도였을 거에요. 당시 유학산에 불이 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공무원들이랑 인근 주민들이랑 완전 비상이 걸렸죠. 새벽까지 사람들이 오르락 내리락 했어요. 당시엔 우리 집사람도 동 부녀회장이었어요. 나 만나서 별 걸 다했지.

새벽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집사람과 서둘러 가보니까 불 끈다고 정신이 없더라고. 그래서 나도 불을 끄러 산에 올라가려고 준비하려는데 사람들이 배가 고프다면서 뭐 좀 먹을 게 없냐고 하는 거에요. 그런데 먹을만한 게 아무 것도 없고, 준비도 안 되어 있는 거에요.

말 그대로 굶으면서 일해야 되는 처지더라구. 산을 오르내리려면 얼마나 배가 고프겠어요. 그래서 일단 식사 준비부터 하기로 했어요.

당시 이화자씨가 구미시부녀회장인가 그랬어요. 밥은 거기서 지어온다기에 난 집사람을 다시 차에 태우고 시장에 장을 보러 갔어요. 근데 너무 일찍이라 상가가 문을 안 열었더라구요. 전부 뚜꺼운 천 같은 걸로 다 덮여있고. 그래도 급한데 어떻게 해. 할 수 없이 내가 천을 벗겨내고 그냥 차에 실었어요. 시래기 같은 거. 그거 차에 싣고 와서 집에서 찜통에 두 통이나 끓여 가져갔어요.

그리곤 유학산 밑에 백곡지가 있는 곳에 식사를 준비시켰어요. 조금 있으니 얼굴이 시커먼 공무원들이 와서 밥을 먹었어요. 얼마나 배가 고팠겠어요. 있는데로 퍼주었죠. 그때 구미쪽 공무원뿐만 아니라 칠곡쪽 공무원들도 와서 밥을 먹었어요. 그쪽에는 아직 밥이 준비가 안 됐었나봐.

밥 실어나른다고 정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다시 시장에 가서 돈을 지불했지. 주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미안하다 말하고. 처음엔 도둑맞은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 주인도 사정을 듣고는 가격도 깎아주고, 시래기도 더 챙겨주더라고. 고생하는 사람들 잘 먹이라면서. 정말 고맙더라구요.

새마을운동 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거에요. 그런 사람들은 무슨 일을 했다고 티도 안 내요. 그냥 그렇게 묵묵히 열심히 남을 돕는 사람들도 있음을 알아 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에요.
 

▲ 박병군 전 회장을 도와 평생을 함께 새마을운동을 한 부인 김말순 씨. 부인 김씨도 진미동 새마을 부녀회장을 역임했다.
▲ 박병군 전 회장을 도와 평생을 함께 새마을운동을 한 부인 김말순 씨. 부인 김씨도 진미동 새마을 부녀회장을 역임했다.

△ 지도자는 소통을 잘 해야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지도자는 사람들과 소통을 잘 해야된다고. 물론 소통이란 게 지도자만 해서는 안되는 거지. 소통을 한쪽으로만 해서는 안 되니까. 내가 새마을일꾼으로 15년 동안 일하면서 보고 배운 게 있다면 지도자들이 일일이 찾아가서 설득하는 거였어.

길을 넓히기 위해서 남의 집 벽을 허물고 집 안쪽으로 다시 벽을 쌓아야 하니까. 그럼 집이 그만큼 줄어들자나요. 그걸 설득하는 거야. 마을을 위해 조금 양보해 달라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다들 좋아하진 않았어요. 누가 자기 집이 줄어드는 걸 좋아했겠어요. 그래도 당시에는 뭐랄까? 희생정신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었어요. 나를 위한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도 중요하고, 또 나라를 위한 것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내 집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편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득이 된다면 다들 조금씩 양보했었어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요즘 뉴스를 보면 땅 주인이 길을 막아서 동네 주민들이 길이 없어 벽을 넘어 다닌다는 등의 기사를 보면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래요. 이게 다 새마을정신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봐요. 난.

그렇게 막다른 길목까지 오도록 아무도 중재를 하지 않았거나 못 한거니까. 즉 지도자가 없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도자란 소통을 할 수 있도록 중재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하거든. 그런 점에서 난 지금의 김관용 지사를 좋아해요.

내가 구미시 협의회장을 할 때였으니, 당시에는 구미시장이였어요. 선산에 일이 있어 갔다가 같이 목욕탕에 가게 됐어요. 속된 말로 발가벗고 목욕탕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시의 현안 문제도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참 격의없이 대화를 나누었죠. 편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이게 바로 지도자가 소통하는 방법이라고 느꼈어요. 난 도지사든 시장이든, 동장이든, 통장이든 모두가 하나의 지도자라고 생각해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던 때처럼 말이에요. 그 사람 한 명 한 명이 자신이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주민을 대하고, 국민을 대하면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겁니다. 그게 바로 새마을운동의 기본 정신이기도 하구요.

▲ 2006년 몽골 새마을도로 개통식 및 생필품 전달식. 당시 생필품의 반 정도가 이동 중 없어졌다고 한다.
▲ 2006년 몽골 새마을도로 개통식 및 생필품 전달식. 당시 생필품의 반 정도가 이동 중 없어졌다고 한다.

△ 몽골로 간 선물의 반이 사라져

내가 구미시 새마을협의회장을 할 때 새마을 세계화사업이 한창이었어요. 구미에서. 그때 세계화사업 한다고 몽골, 콩고 같은 나라에 다녀왔어요. 초창기에는 그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보내는 일을 했어요. 지금은 먹고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지만. 당시에는 여러가지 조건이 어려웠어요. 생필품 하나 보내는 것도 힘들 정도였으니. 당시 각 동에서 받은 수건, 비누, 헌옷 등 여러 생필품을 모아 컨테이너에 담아 보냈어요. 근데 이게 보통일이 아니더라구요. 운임 때문에 항상 말썽이 생기는 거야. 대사관으로부터 전화도 여러 번 받았어요.

몽골에 생필품을 보낼 때였어요. 그땐 모두 새 물건만 보냈어요. 작은 상자에 선물을 담았죠. 컨테이너 하나 가득 실으니까 상자가 300개 딱 들어가더라구요. 그걸 몽골에 보냈어요. 아니나 다를까 중간에 또 문제가 생긴 거에요. 몽골측에서 수입품으로 간주해 컨테이너에 관세를 붙이려 한거에요. 그것도 우리나라 돈으로 300만원이나. 아니 자기 나라 국민들 돕기 위한 물품에 관세를 붙이는 게 말이나 되요? 그래서 내가 관세를 붙이거든 그 자리에서 컨테이너에 불을 붙여 태워버리라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한참 후에 어떤 사람이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리고는 그냥 통과가 되었어요.

나중에 보니 우리나라로 따지면 도의원 정도 되는 사람이었나봐요. 아무튼 그 사람 덕에 물건이 잘 통과됐어요. 그리곤 10시간 넘게 비포장 도로를 달려 컨테이너를 열어 보니까 물건의 반 정도가 없는 거에요. 진짜 어이가 없더라구요. 중간에 없어진 거지. 나라가 힘드니까 좋은 거다 싶은 건 중간에서 막 빼먹고 그랬던 것 같아. 세상은 다 똑 같더라구요. 그래도 우리가 처음부터 주려고 했던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 물건을 가지고 간 사람도 결국은 몽골 사람이었을 거고, 힘들게 사는 건 다 똑같은 거였을테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했어요. 세계화사업을 하면서 그런 일이 종종 있었어요. 그래서 여건이 아무리 어려워도 물품을 가져다 주는 것보다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자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새마을운동이니까. 그래서 지금의 새마을세계화사업이 있는 거에요.

△ 청년들에게 새마을운동을 제대로 알려주길

난 새마을일꾼으로 15년, 새마을지도자로 30년 총 45년을 새마을운동에 몸 담은 사람이에요. 새마을운동의 산 역사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아직도 새마을운동이 있는가라고 물어봐요. 정말 안타까워요. 새마을운동을 모르는 젊은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세계 각국에서 새마을운동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이 시점에 우리나라 청년들은 정작 새마을운동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파요.

다들 아시다시피 새마을운동은 정신운동이에요. 지금의 젊은 청년들에게도 꼭 필요하죠. 시대가 바뀌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살기 힘들다고 느끼는 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문제를 헤쳐나가는 건 결국 정신이죠. 어떤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냐의 문제니까. 꼭 말하고 싶어요. 새마을운동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할 우리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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