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청각 복원 문제가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 19일 김종진 문화재청장이 안동을 찾아 임청각 복원과 관련한 추진방향을 협의하고 또 이상룡 선생의 후손들과도 만나 의견 수렴을 했다. 그는 임청각의 완전한 복원과 석주 선생의 정신이 제대로 알려지도록 정부차원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청장은 이날 “안동의 임청각 복원은 문화재적 의미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 말은 임청각 복원의 의미를 제대로 짚은 것으로 해석된다. 단순한 임청각 건물의 복원보다는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며, 석주 선생의 독립애국정신이 깃든 곳이란 점에 무게를 둔 발언이다.

임청각은 고성이씨 종가로 독립운동가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한 집안에서 9명의 독립운동가가 배출됐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석주 선생은 가산을 정리하고 만주로 떠난다. 이 과정에서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임청각을 판다. 임청각을 판 돈으로 선생은 독립군 양성 등 독립운동으로 일생을 보낸다. 이후 이 집은 고성 이씨 문중이 모금을 통해 가까스로 소유권을 되찾는 과정을 밟는다.

단순한 고택 복원이 아니라 나라를 되찾으려는 명문가 집안의 영욕이 담긴 고택에 대한 복원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 사업을 주목한다. 특히 일본은 강점기 때 독립운동의 정기를 끊기 위해 임청각 마당에 중앙선 철길을 내 이 건물을 반토막 냈던 것이다. 이 사업은 77년 동안 방치돼 왔던 수모 현장에 대한 명예 회복의 의미도 있다.

안동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가 배출된 곳이다. 전국 독립유공자의 15%가 경북에서 배출되었고 그 중에 안동이 348명이나 된다. 전국 시·군단위에서 300명 이상을 배출한 곳은 안동뿐이다. 전국 평균의 10배가 넘는 숫자다. 안동에서 독립유공자가 많이 배출된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니다. 석주 선생과 같이 선비적 정신이 충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의성김씨가 모여 사는 안동시내 앞 마을은 나라를 빼앗기자 한 마을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한꺼번에 빠져 나간 일화를 가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안동은 영남문화의 본향이란 자긍심이 있는 지역이다. 임청각 복원 사업을 계기로 안동의 자랑스러움을 더 널리 알리는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 임청각 복원에 맞춰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을 안동에 유치하자는 움직임에 더 힘을 모았으면 한다.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선생의 본가 복원사업과는 의미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적합할 수 있다고 본다. 때마침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이 추진되고 있다고 하니 재고가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 쪽에 무수히 들어서는 기념관보다는 기념적 의미가 있는 곳에 건립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다. 국토균형발전과도 맞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