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성모병원 산부인과 김도균 주임과장의 진료실 이야기(14)

복강경 자궁내막증수술을 받고도 생리통과 골반통, 배변통, 항문통, 요통, 다리저림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재수술을 받고자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환자들이 최근 들어 크게 늘었다.

타지에서 온 환자들이 얼마만큼의 고통을 느꼈는지 정확히 공감하기는 어렵다. 다만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어떤 환자들은 진료 예약 전날에 포항으로 와 하룻밤 묵고 오전에 진료실로 찾아온다.

이른 새벽에 4~5시간 동안 운전해서 왔다는 환자들도 있다. 그만큼 기대를 안고 마지막 희망을 걸고 온 것이다.

도대체 심부 자궁내막증은 어떤 질환이기에 제대로 진단도 되지 않고 치료도 온전히 되지 않는 것일까.

심부 자궁내막증은 형태가 없다. 근종이나 선근증처럼 특징적인 형태가 있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초음파 영상진단이나 CT, 심지어 MRI검사로도 진단이 쉽지 않다.

따라서 난소의 자궁내막종이 동반되지 않은 한 초음파나 CT 검사로 진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난소 자궁내막종은 초음파 검사로 쉽게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외 심부 자궁내막증은 형태가 없다.

단지 자궁과 직장 그리고 방광 사이 유착이 심해 서로 미끄러지는 현상이 없는 경우, 방광이나 직장에 관찰 가능한 자그마한 결절이 있는 경우, 여기에 더해 특징적인 통증이 있는 경우 의심해볼 수 있다.

경험상 난소 병변을 제외한 골반의 심부 자궁내막증 병변을 미리 알고 찾아오는 경우는 실제 심부 자궁내막증 환자 100명 중 5명 정도였다. 대부분은 아예 병명을 모르거나 난소 자궁내막종 수술 후 호르몬 약을 장기간 복용 중인 환자, 난소 자궁내막종 수술 후에도 골반통, 요통, 다리저림 등이 심해 병원을 찾아오는 경우였다.

심부 자궁내막증이 의심되면 통증과 가장 연관성이 높은 골반 내 위치를 초음파나 MRI검사로 확인하는 작업을 하면서 진단해야 한다.

10년 이상 심부 자궁내막증 복강경 수술을 하며 매일 진단 및 치료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이러한 환자가 내원하면 대응할 수 있다. 평소 이러한 수술이나 진단 등에 집중하지 않으면 놓칠 수밖에 없는 질환이다.

이는 지도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대한민국의 지도를 최초로 제작한 조선시대 김정희는 전국 각 지역을 오랜 시간 직접 걸어다니며 지형지물을 기록했다.

각 지방의 지도를 모아 우리나라 전체 지도를 만드는 과정은 족히 10년 이상이 걸렸으며 완성된 후 비로소 한반도의 전체 형태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심부 자궁내막증 진단도 이처럼 오랜 수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수술적 치료는 더 오랜 시간과 열정이 요구된다. 그만큼 많은 경험이 쌓여야만 알 수 있게 되는 난해한 질병이다.

이 분야를 제대로 진단 치료하는 전문가도 드물다.

예를 들어 5cm 근종이 있고 골반 내 직장과 자궁 후벽 사이 심부 자궁내막증이 동반된 경우 수술 경험상 근종제거술은 3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심부 자궁내막증 제거수술은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주변 장기인 직장, 요관 손상 위험성이 커서 봉합하는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 의료체계에서는 근종 제거술 치료비만 의사에게 지급된다.

여성암 수술보다 난이도가 높지만 현재 한국의 의료제도에서는 심부 자궁내막증 수술비가 책정되어 있지 않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이러한 의료 환경에서 심부 자궁내막증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려고 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한국에도 브라질이나 유럽의 심부 자궁내막증 전문 의사들처럼 힘들고 어렵지만 한 분야에 집중해 평생을 바칠 수 있는 의료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심부 자궁내막증으로 고생하는 더 많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