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보고회에서 직접민주주의의 사례로 `촛불집회`와 `댓글`을 꼽았다. “이제 국민들은 주권자로서 평소 정치를 그냥 구경만 하고 있다가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이런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언급이다. 그러나 `촛불집회`나 `댓글`이 시민의 정치적 의사표명 방식을 넘어 한 종류의 제도적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직접민주주의란 국민투표·국민발안·국민소환 등으로 대표되는 특정한 제도를 말한다. 체제 운영의 일반 원리 차원에서 주로 언급되는 직접민주주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사례다. 당시 `폴리스`의 민회에는 모든 자유민 성인 남성이 출석해 정치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형태는 현대에도 스위스 일부 주 등에서 한정적으로 실시되고 있긴 하다.
일반대중이 정책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대중정당론` 정도에 가까울 따름 굳이 `직접민주주의`라고 부를만한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했는데, 이는 위험한 발언”이라며 “어떻게든 협치에 온 정성을 쏟아서 국회 입법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 대통령의 `직접민주주의론`에 대한 야권의 비난수위가 높다. 자유한국당 강효상 대변인은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의회 패싱` 정치를 선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이용호 정책위의장도 “헌법과 의회민주주의를 무시한 오만하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맹폭했다. 바른정당 박정하 수석대변인 역시 논평을 통해 “촛불민심이 문재인 정권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힐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문 대통령의 `직접민주주의론`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국회무용론` 정서와 연결되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권력만 누릴 뿐, 생산성은 지극히 낮은 패거리 정치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화상을 국회는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민심에 기반을 둔 권위 말고 누군가 챙겨줄 수 있는 의회의 위상은 따로 있지 않다. 과감하게 혁신해야 한다. 국회가 무엇때문에 존재해야 하는지, 왜 존중돼야 하는지 스스로 입증해야만 한다. 지금 그러지 못하면 더욱 참담해질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