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장르를 넘나드는 독특한 글쓰기로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는 현대 프랑스 문학사의 거목이자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 수상작가 파스칼 키냐르(69)의 음악 산문집 `부테스`(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음악교육을 받았고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페스티벌을 기획하기도 한 키냐르는 이 책에서 음악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를 넘나들고 신화와 역사, 형이상학적 사유를 동원해 음악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한 작가가 고대 신화와 문명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음악이 인간에게 건 마법의 정체를 밝히려고 했다.

그는 “슬픔의 세계 끝까지 갈 용기 있는 자는 누구인가? 음악이다”라며 음악을 예찬한다.

“본래의 음악이란 무엇인가? 물로 뛰어드는 욕망”이라며 음악의 힘을 이야기한다.

미케네 문명 말엽부터 신비한 전설이 전해져왔다. 새들의 노랫소리에 매료된 선원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뱃사람들은 밀랍으로 두 귀를 막고 바다를 건넜다.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난 아르고호의 50명의 선원 중에는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와 오르페우스 외에도 부테스가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돛대에 몸을 묶고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듣고, 오르페우스는 키타라 연주로 노랫소리를 덮어 자신과 선원들을 치명적 매혹에서 구한다. 부테스는 노랫소리를 쫓아 바다로 뛰어들어 익사한다.

키냐르는 아폴로니오스의 말을 빌려 음악을 두 종류로 나눈다. `구원의 음악`과 `파멸의 음악`. 부테스를 물로 뛰어들게 만드는 파멸의 음악인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매혹적인 짐승의 목소리로 집단에서의 이탈을 부추긴다. 선원들을 구한 구원의 음악인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사람이 만든 키타라의 음악으로 집단으로의 귀환을 명령한다. 오르페우스의 남성적 음악이 공동체의 일체감을 고취시켜 선원들이 신속하게 노를 젓게 만드는 분절된 음악이라면, 세이렌의 소프라노 노랫소리는 경계 없이 연속된 음악이다.

키냐르에 따르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오르페우스의 군악(軍樂)이나 심포니, 테크노 음악 같은 사회적 음악이 아니다. 오히려 반(反)사회적이고 치명적 위험을 내포한 세이렌의 노래와 같은 음악이다. 그런데 키냐르는 왜 파멸의 음악을 옹호하는가? 부테스의 `물로 뛰어드는 욕망`을 파헤쳐 오르페우스의 사회적 음악이 억압하고 희생시킨, 그리하여 은폐된 본래의 음악과 그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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