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땀방울이 희망의 꽃으로
①새마을운동가 구술생애사 채록
신재학 現 경북도새마을 회장 (下)

▲ 신재학 경상북도새마을회장이 그동안 받은 상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새마을세계화사업 위해 처음으로 동티모르 가보니 생각보다 너무 열악한거야

당시 김관용 구미시장으로부터 제안을 받아 새마을세계화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아마 2005년쯤 이었을거에요.

새마을세계화사업으로 동티모르, 베트남, 몽골, 캄보디아, 세네갈 등 여러 나라를 다녀왔죠. 그 중에서 특히 베트남과 몽골을 자주 갔어요.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처음 갔었던 동티모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2005년도에 갔었어요.

당시 동티모르는 20세기 마지막으로 독립한 국가였어요.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지 얼마되지 않아 매우 빈곤한 국가였지요.

2005년부터 새마을세계화 사업 시작
빈곤한 국가에 잘살수 있는 방법 알려

해외봉사에 어려운 점 많아도
가장 힘든 점은 `한국의 시선`
정치에 휩쓸리는 모습 안타까워

민간외교이자 정신개조 운동
새마을운동 가치 제대로 알아야

생각보다 정말 심각했어요. 조금만 집에 보통 3가구가 함께 살고 있고, 한 가구당 식구가 6~7명이나 되었으니까. 당시 우리는 바우카우라는 곳에 부녀아동센터를 건립해 줬었어요. 전 당시 준공식 때문에 갔었죠. 여러가지 선물들을 가지고.

난 직업이 의사니까 아무래도 의료시설 같은게 가장 눈에 먼저 들어왔어요. 병원이라는 것이 있긴 했는데 너무 열악한거야. 말도 못하게. 의료활동을 좀 하려고 해도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었어요. 의료장비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 뿐이 아니에요. 한쪽 구석에 초음파 기기가 버젓이 있더라구요. 이걸 왜 방치해 두고 있냐고 하니까 다룰 수 있는 의사가 없다는 거에요. 병실 같이 생긴 곳에 들어가니 환자들이 주욱 있는데 그냥 누워만 있는 거에요.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고. 그 중 한 환자가 눈에 들어왔어요. 상태가 심각해 보였어요.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데 아무런 치료도 못하고 있더라구요. 그쪽 의료진들도 그냥 지켜만 보고 있다고 하는 거에요. 4개월 전에 자기발로 걸어 들어온 환자였다고만 설명했어요.

 

▲ 2005년 당시 동티모르 구스마오 대통령이 신재학 회장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 2005년 당시 동티모르 구스마오 대통령이 신재학 회장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 의사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그건 새마을정신에도 어긋나는 거니까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를 한국으로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곳에서는 장비도 없으니 아떠한 진단도 내릴 수가 없었으니까.

의사로서 차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더라구요. 또 그건 새마을정신에도 어긋나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대통령부인에게 부탁했어요. 환자를 한국으로 데리고 가게 해 달라고. 그때 부녀아동센터 준공식에 구마스대통령과 영부인도 참석했었거든. 내가 한국에 데리고 가서 검사를 해보고 치료를 할 수 있으면 치료를 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다음날 연락이 왔어요.

나에게 비행기 표값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 이유는 그쪽 동티모르의 의사 한명도 한 명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치료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그리고 만약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국제적인 분쟁이 생기지 않을거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그래서 일단 내가 먼저 한국에 들어와 500만원을 대사관을 통해 보내줬어요.

그 돈으로 환자가 우리병원으로 오게 됐는데 MRI 등 여러 검사를 해보니 척추에 종양이 생겼더라구요. 종양이 척추 옆 신경들을 누르고 있어 하반신을 쓸 수 없던 거였죠. 신경 98%가 눌려있던 상태였어요. 심각한 상태였죠. 그래도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수술을 했어요.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어요. 수술 후 다리가 조금 움직이더니 약 3개월 정도 있으니 걸을 수 있었어요.

정말 기뻤어요. 그 사람이 다시 걸어다니는게 고맙게 느껴질 정도로. 그때 이런게 새마을운동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좋았어요. 당시 수술을 받은 사람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잘 지내길 바래요. 지금은 생사를 알 수 없어요.

본국으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전이 생겼다고 하더라구요. 그 소식을 듣고 마음 한켠이 무거워지더라구요. 그래도 새마을세계화운동은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니에요. 내 경험으로 단언컨데 새마을세계화사업은 민간외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돼야 하는 사업이에요.

 

▲ 2005년 동티모르 바우카우 부녀아동센터 건립기념식 모습.
▲ 2005년 동티모르 바우카우 부녀아동센터 건립기념식 모습.

△ 새마을운동은 정신운동이다

초창기 새마을세계화사업은 솔직히 가난한 나라에 필요한 물품을 갖다주고 건물을 지어주는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건 진정한 새마을운동이 아니었죠. 새마을운동은 어떻게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또 어떻게하면 교육을 잘 받을 수 있을까. 그런 방법을 가르쳐 주는 운동이자나요. 단순히 돈을 들여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거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방법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물고기를 던져주는 식이고, 다른 하나는 낚시법을 가르쳐주는 식이죠.

새마을운동은 사람들에게 낚시법을 가르쳐 주는 거에요. 처음에는 공짜로 물고기를 받은 사람들은 배를 채우겠지만 하루만 지나면 또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낚시법을 배운 사람은 하루는 고생하겠지만 영원히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자나요.

그래서 그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쳐주고, 집을 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죠. 그리고 지도자를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한국에서 교육도 시켰어요.

그 사람들에게 협동심이란걸 가르쳐 주었어요. 모두가 함께 잘살아야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 거죠. 혼자서는 가난을 이겨내지 못하니까. 모두가 함께 가난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힘을 모아야 하는 거자나요. 그게 새마을정신이죠.

요즘 사람들은 새마을운동을 봉사활동 정도로 생각하던데 그런게 아니에요. 새마을운동은 정신운동이에요. 더 엄연히 말하면 정신개조운동이구요.

 

▲ 의료시설이 없이 하반신이 마빈된 채 방치되어 있던 동티모르 환자를 한국으로 데려와 치료했다. 3개월 후 완치된 환자와 다시 동티모를 찾은 신재학 회장.
▲ 의료시설이 없이 하반신이 마빈된 채 방치되어 있던 동티모르 환자를 한국으로 데려와 치료했다. 3개월 후 완치된 환자와 다시 동티모를 찾은 신재학 회장.

△새마을운동의 가치를 바로 알아줬으면…

전 새마을운동을 그리 오래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도 정말 새마을운동에 열정을 가지고 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특히 해외에 봉사활동을 나갔을때 그 사람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진심으로 우리를 반겨주거든. 그게 눈에 보여요. 모두가 우리를 환영해주고, 정말 고마워하는 모습이.

그런 모습에 정말 힘이 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죠. 20년 가까이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한번도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정말 힘든 건 새마을운동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죠.

특히, 요즘들어 새마을운동이 정치적으로 휩쓸리는 것 같아 새마을회장으로서 마음이 편치않아요. 솔직히 새마을운동에 대한 잘못된 편견은 언제나 있었어요. 군사독재정권이 일으킨 것이니 무조건 나쁜것이다.

혹은 늘 정부쪽에 서서 일하는 관변단체이다 등의 선입관으로만 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죠. 지금도 그럴거에요.

그러한 선입견으로 인해 언론이나, 학술단체 등에서 새마을운동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자나요.

수해나 대형 화재 등의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실천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잠시 비춰지는게 고작이죠. 그것도 너무나 당연히 여기면서. 사실 그런것들을 알아달라고 이야기하는게 아닙니다. 그냥 새마을운동을 제대로 봐달라는 거지.

새마을운동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했기 때문이에요. 이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새마을운동을 폄하한 적이 없어요. 그들도 잘 알고 있어죠. 새마을운동이 정신운동이라는 것을.

새마을운동은 `CAN DO` 정신이에요. 그런데 요즘 젊은세대는 `CAN DO` 정신을 조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CAN DO` 정신은 무조건 하면된다 이런게 아니에요. 거기에 앞서 동기와 목표가 있었야하는 거죠. 우리는 배고픔을 벗어나는게 목표였고, 옆 마을이 잘 되는 모습이 동기가 되었죠.

그 당시엔 경쟁을 붙였으니까. 동기와 목표는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거에요. 요즘 젊은세대들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게 바로 진정한 `CAN DO` 정신이니까.

구미/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