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 정몽주와 영천 임고서원

▲ 만약 포은이 살아 돌아와 임고서원 충효문화수련원에서 사람들을 만난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해 그림으로 표현했다. 삽화/이찬욱

고운 색깔의 한복을 갖춰 입은 학생들의 몸가짐이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예절 담당 강사의 조언에 따라 줄지어 손을 씻은 후 쪽마루에 오르는 열일곱 소년·소녀들의 움직임이 의젓하고 단정했다.

작년 충효문화수련원 방문 수련생 총 1만5천여명
포은정신 계승·전통과 역사 교육의 장으로 `인기`
`선비아카데미 전문·교양과정` 등 선비정신 계승 열정

글 싣는 순서

1.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 포은의 생애와 사상
2. 빛나는 사액서원(賜額書院)… 영천 임고서원을 찾아
3. 포은의 숨결 되살리는 임고서원 충효문화수련원

 

▲ 붉고 아름다운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진 여름날 임고서원의 풍경.
▲ 붉고 아름다운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진 여름날 임고서원의 풍경.

영천시 임고면 포은로에 위치한 임고서원 충효문화수련원(원장 김명환)은 평소에도 이런 교육생들이 적지 않게 방문하는 곳이다.

비단 초중고교 학생들만이 아니다. 전통문화와 왕조시대 역사에 관심을 가진 성인 관광객과 각종 교육을 진행하는 공무원, 한국에 호의적인 눈길을 보내는 외국인들까지 충효문화수련원을 찾는 사람들의 층위는 넓고 다양하다.

강의실과 예절실, 식당과 숙박시설을 갖춘 충효관과 수업과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대강당과 소강당으로 이뤄진 연수관이 충효문화수련관의 주요 시설이다. 지난해 이곳을 찾은 수련생은 모두 1만5천300여 명.

포은의 정신을 계승하고 미래세대에게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효과적으로 교육·소개하기 위해 마련된 충효문화수련원은 영천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진 것인지 김명환 원장에게 물었다.

“어느 때부턴가 영천의 문화관광에서 임고서원과 충효문화수련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이전에는 은해사와 거조암부터 찾던 관광객들이 요즘엔 임고서원을 먼저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충효문화수련원에도 입소의 방법과 교육과정을 묻는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그에 발맞춰 현재 50여 명 정도가 수용 가능한 숙박공간을 대폭 늘이기 위해 제2숙박동 건립이 진행 중이다. 내년에 완공되면 수련원을 찾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외국 학생들이 충효문화수련원을 찾아 한복을 입고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 외국 학생들이 충효문화수련원을 찾아 한복을 입고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 포은 정몽주의 사상을 선양하려는 영천시의 노력

영천시청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문화와 관광의 인프라로 활용하는 21세기적 흐름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2012년부터 진행된 ▲임고서원 성역화사업 ▲생가 등 포은 유적지 성역화사업 ▲충효문화수련원 교육시설 확충 등이 그간 기울여온 노력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수련원 예절실에 모인 학생들을 잠시 지켜봤다. 스마트폰 게임과 무대에서 춤추는 또래의 연예인들이 평소 이들의 관심사였겠지만 그날은 달랐다. 점잖게 앉아 책을 펼치고 선현들의 행적을 더듬는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또한 믿음직했다.

충효문화수련원은 경상북도에서 유일하게 `선비아카데미 전문·교양과정`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수련원과 별빛중학교, 포은초등학교 등이 교육공간으로 사용된다. 영천시 일원이 선비정신을 되살리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전문과정이 유림(儒林)과 시민을 위한 것이라면, 교양과정은 아이들을 위한 `사자소학(四字小學·어린이용 한자 교과서)`과 `명심보감(明心寶鑑·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어린이 인문교양서)` 교육이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이다.

이는 선현이 축조한 학문과 정신의 탑을 학생들이 다듬어 다시 세우려는 노력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였다.

 

▲ 임고서원엔 공무원들의 발길도 잦다. `청렴교육`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울산교육청 관계자들.
▲ 임고서원엔 공무원들의 발길도 잦다. `청렴교육`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울산교육청 관계자들.

◆ 전통에 현대적 요소 가미시켜 교육의 효과 높여

김명환 원장은 말했다. “부모의 권위마저 땅에 떨어진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회적 규범이 무시되고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도 만연해 있다. 이런 때일수록 충효를 실천하고 신의를 지킨 포은의 행적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수련원의 교육을 포함해 영화와 드라마, 오페라와 음악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포은이 지향했던 숭고한 이념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고서원 충효문화수련원 김 원장과 5명의 직원, 10명의 강사들은 “어떤 방식이 아이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시키는데 도움이 될까”라는 고민을 오늘도 하고 있다. 그 고민은 한국의 미래 청사진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지금까지 충효문화수련원은 전통문화를 위주로 한 교육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수련원을 찾는 아이들에게 `의미`와 함께 `재미`까지 전달해주기 위해 수업에 현대적 요소를 가미하려고 한다. “보다 높은 교육 효과를 얻기 위해서”라는 게 이원석 교학부장의 설명이다.

흥미로웠던 취재를 마친 후 임고서원과 충효문화수련원을 한 번 더 천천히 돌아봤다. 사파이어 색채로 빛나는 푸른 하늘과 붉게 핀 배롱나무꽃이 대조를 이루며 여름이 무르익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달콤한 향기가 밀려오는 듯했다. 역사와 전통을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당장은 별 소용이 없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작지만 꼭 필요한 도움을 주는 은은한 향기 같은 것이 아닐까.

 

▲ 포은과 임고서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김영석 영천시장.
▲ 포은과 임고서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김영석 영천시장.

인터뷰 김영석 영천시장

영천의 자랑 `임고서원` 성역화 완료
충절의 역사 전 국민에 알리고 싶어

김영석 영천시장은 포은과 임고서원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역사에서 선현의 지혜를 배우고, 이를 미래 설계에 적극 반영하려는 김 시장을 만나 `영천의 자랑`이라 할 임고서원과 정몽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육군사관학교 출신이고 주로 외교 관련 업무를 맡아왔다고 들었다.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유나 계기가 있는지.

“육사는 확고한 국가관과 안보관을 요구한다.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다른 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일을 하다 보니 역사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부분이라 관심을 가졌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역사를 통해 현재를 냉정하게 성찰해야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 포은은 충절과 절개, 효행과 학문 모든 방면에서 업적을 이뤘다. 김 시장이 주목하는 분야는 무엇인가?

“하나만 꼽으라면 충절을 선택하겠다. 충절은 진실된 마음으로 우리의 법도와 제도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어느 시대나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올바르게 절의를 지킨 사람들은 추앙받고 후대의 표본이 된다. 충무공 이순신이 그렇고 포은 정몽주가 그렇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인권을 제대로 누리려면 우리를 보호해 줄 나라가 필요하고 그 나라는 우리가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 임고서원을 효과적으로 홍보할 방안이 있는지.

“임고서원의 명성에 걸맞은 기반시설 확보를 위해 성역화사업을 지난 2012년 마무리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계해 관광객 유치와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 충효문화수련원을 생활예절, 서예 등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 시키고, 별빛나이트투어 등 관광상품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엔 영천시 SNS 서포터즈가 발족돼 영천의 명소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오늘날 공직자들은 포은 정몽주의 어떤 측면을 배워야 할까?

“국가에 대한 충성, 믿음을 지키는 절개, 문무를 겸비한 당당함, 탁월한 협상력 등 어느 하나 배우지 않을 것이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애민정신을 배워야 한다. 포은은 구휼기관인 의창을 다시 세워 궁핍한 사람을 구제하고 오부학당과 향교를 둬 교육 진흥에 노력했다. 이는 백성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고민의 산물이다.”

- 취임 이후 포은의 사상을 선양하고, 임고서원을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197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임고서원 성역화사업으로 전시관, 생활체험관, 선죽교, 소공원 등이 새롭게 설치됐다. 포은의 시를 엮은 문집과 보물 1109호로 지정된 임고서원 전적들을 볼 수 있는 포은유물관을 운영해 누적 관람객이 18만명을 넘고 있다. 지난 2015년에는 우항리에 22억원을 들여 포은의 생가를 중창했다.”

- 포은과 임고서원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해외 주재 외교관으로 지내다 고향 영천에 돌아와 보니 임고서원 앞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그 크기에 압도돼 연혁을 알아보니 본래 임고서원이 부래산에 있을 당시 그곳에 있던 것을 1600년경 현재 위치에 복원할 때 옮겨 심은 것이라 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임고서원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나무의 생명력 덕이 아닐까 싶었다. 그 그늘에서 땀을 식히다가 나도 영천시민에게 이처럼 시원한 그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은행나무와 같은 생명력을 영천에 불어 넣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

“영천 3선현이 있다. 포은 정몽주와 가사문학의 대가 노계 박인로, 화약을 발명한 최무선 장군이다. 영천시는 이들의 행적을 기억하려 한다. 앞서 말한 임고서원 성역화사업 외에도 노계가사문학관을 건립 중이며, 최무선과학관은 2012년 개관해 관람객들의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역사의 향기가 가득하고 치산계곡, 강변공원이 있는 영천으로 여름휴가를 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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