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앨리스
신현림 지음
민음사 펴냄·시집·9천원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신현림(56)은 신선하고 파격적인 상상력으로 독특하고 매혹적인 시를 쓰고 사진을 찍는, 장르를 넘나드는 전방위 작가다.

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한 그는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 `사과 여행` `사과밭 사진관` 등 여러 차례 사진전을 열었다.

그는 동시 작가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초코파이 자전거`를 비롯해 `옛 그림과 뛰노는 동시 놀이터` `세계명화와 뛰노는 동시 놀이터` 등 세 권의 동시집을 냈다.

그가 지난 2009년 시집 `침대를 타고 달렸어`를 낸 지 8년만에 시집 `반지하 앨리스`(민음사)를 펴냈다.

그는 1990년대에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등의 젊고 파격적인 시집을 내놓으며 가장 전위적인 시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아왔다.

당대의 제도권적 여성 담론을 뒤흔든 가장 전위적인 여성 시인으로 평가받는 그가 10년 만에 선보이는 `반지하 앨리스`에는 연작시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를 비롯해 68편의 시가 실렸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반지하에 불시착한 앨리스들의 애환에 주목한다. 그러나 가난의 뿌리를 적나라하게 털어놓는 솔직함에는 언제나 삶의 의지를 놓지 않는 `사랑`이 있다. “쓸쓸한 나와 같은 너를 찾아/ 슬픔에 목메며/ 슬픔의 끝장을 보려고/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처절한 고백은 삶의 고통과 아픔에 몰입하는 대신 함께 슬퍼할 사람을 찾고 그 슬픔을 견딤으로써 오히려 슬픔의 끝장을 보는 힘이 된다. 겉치레와 위선 없이 마음의 밑바닥까지 말하는 `반지하 앨리스`는 신현림 시인이 반지하 세계에서 동시대 사람들에게 보내는 생존신고이자, 함께 더 잘 살아 보자는 위로의 편지다.

세상을 바라보던 허무주의적이고 비관적인 시선은 세월호 참사와 촛불 집회라는 동시대 사건을 겪으며 애도와 희망 쪽으로 품을 넓혔다. 차 벽과 의경이 아닌 촛불과 시민들로 가득 찼던 광화문 광장은 시인에게 또 하나의 세계를 열어 주는 문학적 사건이 됐다. 시와 더불어 위안부 소녀상과 촛불 집회의 사진을 수록함으로써 더욱 현장감 있게 동시대성을 표현한 `반지하 앨리스`는 신현림 시인이 살아가고 있는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옷을 벗겨 줘, 절망의 옷을

절망의 이 옷을 벗겨 줘

무력감에 찌든 살과 뼈를 태워 줘

물고기처럼 바다 위로 솟아올라

다시 펄펄 살아나

하늘 끝까지 튀어 오르게”―`절망의 옷을 벗겨 줘``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3`에서

`반지하 앨리스`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죽음에 저항하며 삶을 이어나가는 시인의 태도다.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라는 선언적인 제목으로 발표됐던 연작시는 시집에서 새로운 제목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절망으로부터 도약하는 순간을 포착한 이 시에서는 맨몸으로 마주한 두 연인이 있다. `나`의 힘만으로는 떼어낼 수 없는 절망을 벗기 위해서는 `너`의 손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벗을 수 없는 `절망의 옷`을 벗겨 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이 있기에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극복하고 절망으로부터 탈출하는 이 애틋한 에로티시즘의 순간은 죽음의 반대편에서 생명을 만드는 사랑의 기원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도 세월에서 빗겨날 수 없기에, 신현림 시인은 더 풍요롭게 나이 드는 법을 택한다. 시간이 쌓여 두툼해진 발은 곧 살아온 삶의 경험과 궤적이다. 인생의 우여곡절로 발바닥에 베긴 굳은살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감각하게 한다.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만지고 맞닿으면서 삶 자체를 음미하는 발은 결국 살아 있기에 얻게 된 새로운 감각이다. 죽음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던 시간을 이겨낸 끝에 쟁취한 작은 평화이기도 하다. 시인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지금 그가 서 있는 자리에 감사해 한다.

▲ 신현림 작가
▲ 신현림 작가
이번 시집과 같은 제목으로 지난 1일부터 오는 10일까지 서울 갤러리에서 열리는 사진전 `반지하 앨리스`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발휘되는 시인의 예술적 감각을 증명한다. 시인에게 `반지하`는 곧 삶의 터전이다. 시인은 그곳에서 시를 쓰고, 아이를 키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골라낸다. 반지하는 시인이 세상으로부터 상처받는 근원인 동시에 그 상처를 바탕으로 삶의 애환을 시로 담아낼 수 있도록 만드는 문학의 공간이다. 이름에서부터 지하도 지상도 아닌 경계를 가리키는 반지하는 한 아이의 엄마인 동시에 시인이고, 사진작가인 동시에 화가인, 언제나 경계 사이에 존재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신현림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윤희정기자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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