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지리멸렬이다. 지난 5·9대선에서 패배해 정권을 빼앗긴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입으로는 혁신한다면서 행보는 사뭇 퇴행적이다. 국민의당은 `제보조작` 사건이 아킬레스건이 되어 사족을 못 쓰는 형편이고, 바른정당이 보수정치의 적자(嫡子)로 도약하고자 애를 쓰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야당이 민심을 얻는 길은 `제대로 된 혁신` 외길뿐인데, 줄곧 갈팡질팡하고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가 지난 24일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지만 `우향우 행보`가 문제다. 류석춘 위원장은 “저는 저희 당을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목표로 혁신할 것”이라고 강조해 당 혁신작업 방향이 `우(右)클릭`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강경보수 인사 일색인 혁신위가 당헌당규 개정까지 시도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당내 중도·개혁파들과의 마찰조짐이 뚜렷하다.

복당파인 장제원 의원은 “어떤 분(혁신위원)은 탄핵 문제에 대해서 (탄핵 찬성파들에게) `주인을 문 개XX다`라는 발언을 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주인이냐”고 되물었다. 장 의원은 “혁신위의 면면을 보면서 당이 어디로 갈 것인지 걱정을 했다”고 꼬집었다. 한국당 혁신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는 한 시민이 난입해 “일베·뉴라이트 류 위원장이 일베 정신으로 한국당을 개혁하는 것이냐”고 항의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국민의당도 형편은 다르지 않다. 국민의당은 영남대 김태일 교수를 혁신위원장으로 선임하고 혁신방안을 도출해내고 있다. 국민의당 혁신위는 대표에게 강한 권한을 주어 혁신을 이끌도록 하기 위해 최고위원제 폐지 등을 요구했으나, 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와 박지원 전 대표 등에 대한 인적쇄신 주장도 당내 한 축인 안철수계 인사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다소 하락했음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70% 이상의 높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고, 민주당 역시 10주째 50% 이상의 고공행진이다.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견제세력의 성숙한 활약이 필요한 시점에 야당들이 맥을 못 추는 현실은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정권을 허망하게 잃고도 환골탈태의 신작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미심쩍은 행태가 가장 큰 걱정이다.

자유한국당은 잘못 놓인 혁신 이정표를 수정해야 한다. “15% 남짓한 탄핵 반대층, 대구·경북 지역에 스스로 갇히겠다는 것”이라는 일각의 비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집권당이 높은 지지율에 힘입어 뭐든지 밀어붙일 기세를 떨치고 있는 국면에, 시대정신을 담은 진정한 혁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정치개혁`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야당의 소탐대실(小貪大失) 정치행태가 개탄스럽다. 부디, 민심의 소재를 정확하게 살피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