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의 혼 간직한 고령 미래를 그리다

▲ 맛과 품질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아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에서 사랑받고 있는 고령 개진감자.

1960~70년대 언론사에서 일한 백발의 은퇴 기자들이 기억하는 이름이 하나 있다.

홍승면(1927~1983). 1949년 `합동통신사` 입사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한국일보 편집국장과 동아일보 논설주간으로 필명을 떨친 `전설적 문장가`다.

언론계를 떠나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 전까지 홍씨는 신문 기사의 새로운 영역을 필마단기(匹馬單騎)로 개척했다.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으로 철학과 역사의식이 행간마다 드러나는 명문을 썼던 그가 특히 발군의 재주를 보인 영역이 `먹을거리`에 관한 글이었다.

그의 저서 `백미백상`(百味百想·백 가지 맛에서 느낀 백 가지 생각)은 `음식으로 읽어낸 인류의 문화사`라 이름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다.

피어난 온갖 꽃들로 아름다운 봄부터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여름에 걸쳐 고령군을 자주 찾았다.

고령이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특별한 먹을거리` 취재를 위해서였다.

딸기와 감자, 수박과 멜론. 여기에 참외와 비옥한 토양이 만들어낸 고령 옥미(玉米)까지.

그것들이 자라는 밭을 둘러보고, 하나하나의 맛을 보면서 기자는 자연스레 홍승면을 떠올렸다.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드라마틱하고 정치(精緻)한 문장으로 고령 특산품의 맛을 소개하고, 그것들에 얽힌 역사적·문화인류학적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낼 수 있었을까”란 아쉬움 섞인 혼잣말도 했다. 그러나 흘러간 강물을 되돌릴 수 없듯 죽은 자를 살려내는 것은 인간이 가진 능력 밖의 일이다.

그렇기에 2017년 여름, 고령 특산물의 소개는 살아남은 오늘날의 기자들이 맡아야 할 몫이다.

다가서는 커다란 부담감에 펜을 잡은 손가락이 떨리더라도.

우곡 수박·개진 감자·성산 멜론 등
현대적 친환경농법으로 재배
전국 도시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

▲ 고령 딸기는 최근 태국으로도 수출되고 있다. 태국 백화점에 진열된 고령 딸기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델들.
▲ 고령 딸기는 최근 태국으로도 수출되고 있다. 태국 백화점에 진열된 고령 딸기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델들.

◆ `크고 넉넉한 마음`의 꽃을 피우는 수박

고령의 농민들은 노랗게 피어난 수박꽃을 보며 여름이 왔음을 실감한다.

수박꽃의 꽃말은 `크고 넉넉한 마음`. 맛은 물론 크기에서도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고령 수박은 군민들의 자랑인 동시에 자부심이다.

해마다 여름의 입구로 들어서는 5월 말이 되면 고령의 농가들은 분주해진다.

특히 `고령 수박의 주산지`로 불리는 우곡면이 그렇다. 낙동강이 선물한 비옥한 토양과 현대적인 친환경농법을 결합해 재배되는 고령 우곡수박은 `정밀 토양 검사`를 통해 최상의 품질을 지향하고 있다.

보통의 수박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의해 빨리 수확하는 것에 집중한다.

하지만 고령 수박은 1년에 한 번만 심고 한 번만 수확하는 `슬로우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수정을 한 후 45일이면 상품가치를 가지게 되지만, 이를 보름 이상 더 충분히 익혀 당도를 높인 것이 우곡수박이 빼어난 맛을 가지게 되는 비결이다.

고령군청 관계자는 “고령 수박이 농산물로는 최초로 KBS 다큐멘터리(`신화창조의 비밀)에 방영된 게 2004년”이라며 “2011년부터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지리적표시제에 등록돼 고령 최고의 농산물 중 하나로 관리되고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수박은 칼슘과 비타민A가 풍부해 신장에 좋고, 항암효과가 입증된 시트룰린도 다향 함유하고 있다.

▲ 큼직하고 당도가 높으며 아삭한 식감이 여름날 미식가의 입맛을 자극하는 고령 우곡수박.
▲ 큼직하고 당도가 높으며 아삭한 식감이 여름날 미식가의 입맛을 자극하는 고령 우곡수박.

◆ 비타민이 풍부한 감자

얼핏 보기에 감자와 비타민C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건 선입견이다.

농산물 전문가들은 “감자 두 알만 먹으면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C를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한국보다 감자를 훨씬 많이 먹는 아일랜드 등의 유럽에선 감자를 “땅 속의 사과”라고 부른다.

고령군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감자 생산지다.

고령 감자는 많이 재배되는 지역인 개진면의 이름을 따 `개진 감자`라고도 부른다.

주로 생산·수확되는 품종은 `수미`. 식이섬유와 전분 함유량이 높고, 담백한 맛이 특징인 고령 감자는 저장성 또한 뛰어나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다.

고령농협은 개진면에서 생산되는 감자가 수도권을 포함한 각 지역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품질이 우수한 1기작 감자만 생산하며, 수확 후 벼를 재재하는 답전윤환방식을 통해 연작 장애를 막고 있기에 고품질의 감자가 나올 수 있다.”

현재 고령군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농가는 약 600여 곳. 314ha의 고령 들판에선 해마다 맛좋은 감자가 생산돼 전국의 대형마트와 각종 가공업체에 공급되고 있다.

▲ 고령군 성산면 농민이 멜론 수확을 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고령군 성산면 농민이 멜론 수확을 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농민들의 땀으로 영글어가는 고령 멜론

우곡면이 수박, 개진면이 감자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면 고령군 성산면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의 멜론으로 유명하다.

전국 파파야 멜론의 60% 이상을 생산하는 성산면은 `하늘의 선물`이라 할 사질토양(砂質土壤·모래가 많이 함유돼 물 빠짐과 통기성이 좋은 흙)이 멜론을 맛있게 익히고 있다.

여기에 일조량이 긴 고령의 자연환경도 향기로운 멜론이 자랄 수 있는 좋은 조건이다.

고령 멜론의 특징은 껍질에 그물 무늬가 없고 매끄러우며, 타원형의 형태에 얼룩무늬가 있다는 것이다.

“비파괴당도 측정기로 공동선별 과정을 거치고, 2kg 단위부터 소포장을 해 신세대 소비자의 취향에 맞추고 있다”는 것이 이와 관련된 고령군청의 설명이다. 멜론은 성인병 예방과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과일이다.

▲ 고령군 `딸기 수확체험`에는 많은 수의 외국인들도 참여하고 있다. 딸기를 따며 환하게 웃는 외국인 관광객.
▲ 고령군 `딸기 수확체험`에는 많은 수의 외국인들도 참여하고 있다. 딸기를 따며 환하게 웃는 외국인 관광객.

◆ 누구나 좋아하는 달콤한 맛 딸기

세상 대부분의 음식은 호오(好惡)가 갈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딸기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대중적 인기 과일`임을 부정할 수 없다. 비단 사람들만이 아니다.

유럽의 신화에선 여신(女神)도 딸기를 즐기는 것으로 묘사된다. 새콤하고 달콤한 유혹을 떨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리라.

▲ 새콤하고 달콤한 맛으로 남녀노소 모두를 유혹하는 고령 딸기.
▲ 새콤하고 달콤한 맛으로 남녀노소 모두를 유혹하는 고령 딸기.

가야산 맑은 물이 길러내는 고령 딸기는 벌이 자연수정하는 방식으로 재배된다.

올해 고령군은 400여 농가가 160ha의 땅에 딸기를 키웠다. 그것으로 올린 조수익은 310억 원. 철저한 품질관리를 지속하고 있는 고령군의 딸기는 1990년대부터 일본과 홍콩 등으로 수출됐고, 이제는 그 영역을 태국 등지로 넓혀가고 있다.

여기에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농산물을 직접 따서 맛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딸기 수확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지난해엔 이 체험 프로그램을 즐기고자 1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고령을 찾았다.

▲ 고령의 비옥한 땅은 맛있는 수박을 길러낸다. 그 속에서 꿈을 키워가는 농민 최송기 씨.
▲ 고령의 비옥한 땅은 맛있는 수박을 길러낸다. 그 속에서 꿈을 키워가는 농민 최송기 씨.

“하늘이 내린 땅 고령에서
내 손으로 키우는 과실
농부들의 가장 큰 행복”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한 번 먹고나면 자꾸만 찾게 되는 음식이 있다고 하죠? 고령 딸기가 바로 그런 과일입니다.”

금천딸기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철호(54·고령군 개진면 반운리) 씨는 자신이 땀 흘려 길러내는 딸기에 대한 자랑이 대단했다.

“우리들의 정성과 더불어 품질관리 등에서 철저하게 규정을 지키는 것이 맛있는 딸기의 생산 비결”이라고 말하는 이철호 이사장의 말에서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는 “고령의 가장 큰 행사인 대가야체험축제 때면 인근 지역의 가족은 물론 외국인들도 딸기 수확체험장에 넘쳐난다”며 “최근엔 태국으로도 딸기 수출을 시작했는데, 보다 시스템화 된 홍보로 고령 딸기를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하며 환하게 웃었다.

김홍식(63·고령군 우곡면 답곡2리) 씨는 수박농사만 40년을 지어온 자타공인 `수박 박사`다.

“올해는 수박 가격이 높아 동네 주민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는 행복한 뉴스를 전한 김씨.

▲ 고령의 비옥한 땅은 맛있는 딸기를 길러낸다. 그 속에서 꿈을 키워가는 농민 이철호 씨.
▲ 고령의 비옥한 땅은 맛있는 딸기를 길러낸다. 그 속에서 꿈을 키워가는 농민 이철호 씨.

“하늘이 내린 좋은 땅 우곡면에서 수박을 키우며 살 수 있다는 게 나의 가장 큰 행복”이라 말하는 김씨는 삶을 달관한 철학자처럼 보였다.

그처럼 한 우물을 파며 생을 살아온 농민이 있는 한 한국의 농촌 현실이 마냥 비관적이지만은 아닐 듯했다.

한편 고령군은 수박과 감자, 멜론과 딸기, 참외와 쌀 등 고령을 대표하는 특산물의 판매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고령몰(http://www.grmall.co.kr)과 대가야 파머스마켓(054-955-2077)을 운영 중이다.

인터넷과 직접 방문을 통해 고령의 진미를 맛볼 수 있으니 참고할만한 유용한 정보다.

/전병휴·홍성식기자

    전병휴·홍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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