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오생근·조연정 엮음
문학과지성사 펴냄·시인선·8천원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그대가 있다

불을 기억하고 있는 까마득한 석기 시대,

돌을 깨뜨려 불을 꺼내듯

내 마음 깨뜨려 이름을 꺼내가라”

- 황지우, `게 눈 속의 연꽃`에서

지난 40여 년간 한국 현대 시사에 선명한 좌표를 그려온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어느덧 통권 500호를 돌파해 기념 시집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문학과지성사)를 출간했다.

1978년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로 시작한 문지 시인선은 시인 211명의 시집 492권과 시조시인 4명의 시선집 1권, 연변 교포 시선집 1권, 평론가 10명이 엮은 기념 시집 6권 등으로 이뤄진 한국 최초, 최대 규모의 시집 시리즈이다. 최근 통쇄 82쇄를 돌파한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에서부터,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통쇄 63쇄),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52쇄),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46쇄) 등 당대의 굵직한 베스트셀러이자 꾸준한 스테디셀러들을 다종 보유하고 있다. 격동의 역사와 함께 꾸준히 변화해온 문학의 현장 한복판에서 인간과 삶에 대한 본질적 탐문을 참신한 언어와 상상력으로 묻고 답해온 많은 시인들의 뜨거운 열정이 담긴 문학적 `사건`으로서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2017년 여름 500호를 맞았다.

시인선이 시작된 지 12년 만에 100호가 출간된 이래, 약 6~8년 주기의 속도로 100권씩 시집이 누적돼왔다. 발문에서 평론가 조연정이 지적했듯, 지난 40년간 한국 사회에서 문학의 위상이, 특히 시의 위상이 어떻게 축소되어왔는지를 생각해보면, 일정 기간 동안 큰 편차 없이 차곡차곡 시집을 출간한 일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 또한 올해 출간된 도서를 포함한 시인선 전체 499권 중 약 88%에 해당하는 439권이 한 회 이상 중쇄됐다는 사실은,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자족적인 수준에 머무른 것이 아닌 독자와 세계를 향해 꾸준히 나아갔다는 증거라고 읽힐 만하다.

500번째 시집이자 시리즈 내 전종을 대상으로 기획된 기념 시집`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는 초판이 출간된 지 10년이 지나도록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세월에 구애됨 없이 그 문학적 의미를 갱신해온 시집 85권을 선정해, 편집위원을 맡은 문학평론가 오생근, 조연정의 책임하에 해당 시집의 저자인 65명의 시인마다 각 2편씩의 대표작을 골라 총 130편을 한데 묶었다. 제목은 수록작 중 황지우 시인의`게 눈 속의 연꽃`의 구절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그대가 있다”의 일부를 차용했고, 시와 함께 발문과 시인 소개, 그리고 그간의 시집 목록 등으로 구성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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