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영조 왕은 붕당(朋黨)정치의 결과로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붕당의 폐해를 너무나 잘 알기에 왕위에 오른 영조로서는 탕평책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도 당쟁의 폐해를 막고자 탕평책을 쓴 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는다. 정조는 국왕에 즉위한 1776년 9월 `탕평윤음`이라 불리는 자신의 정치이념을 발표한다. “탕평이란 곧 편당(偏黨)을 버리고 상대와 나를 잊는 이름인데 위에서 본다면 균등한 한 집단의 사람들이고 다 같은 동포이다. 지금 이후로 무릇 나를 섬기는 조정 신하는 노론이나 소론 할 것 없이 모두 대도(大道)에 나오도록 하라. 오직 그 사람을 보아 어진이는 등용하고 몹쓸 사람은 버릴 것이다”라고 했다.

탕평(蕩平)이란 서경에 나오는 왕도탕탕(王道蕩蕩) 왕도평평(王道平平)에서 따온 말이다. 임금이 지켜야 할 법도를 이른다. 임금은 치우침이 없이 공정 무사해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감싸서도 안 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서 물리쳐서도 안 된다. 그것이 임금님의 도리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붕당정치로 인한 갈등과 분열의 시대상을 많이 보았다. 사색당파라 불렀다. 노론 집안은 노론 집안끼리만 혼사를 맺었다. 노론과 소론 집안 아낙네들은 치마 둘러 입는 방법도 서로 달리했다. 머리 묶는 법도만 보아도 분파가 서로 다름을 알았다 하니 붕당정치가 낳은 폐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간다.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을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부른다.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익힌다는 것으로 과거의 역사를 교훈삼아 올바른 지식을 행한다는 뜻이다. 역사는 우리의 거울과 같다. 과거 없는 현재가 없듯이 역사가 주는 교훈은 언제나 위대하다. 역사에서 보았듯이 영원한 것이란 없다.

새 정부가 출범한지 두 달여가 흘렀다. 초심은 있는지, 협치의 정신은 살아 있는지 궁금하다. 나 홀로 과속 질주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역사 속 탕평의 철학이 지금의 대통합 정신과 다름이 없는게 아닌가 싶어서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우정구(객원논설위원)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