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이 일시 중단됐다. 전날 한수원 노조와 원전건설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던 한수원 이사회가 14일 오전 경주의 한 호텔에서 기습적으로 열려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을 전격 의결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운명은 3개월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재개 여부가 판가름난다.

그러나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비춰볼 때 신고리 5·6호기의 재개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우리나라 신규 원전건설은 새 정부 들어 모두 중단됐다고 보면 된다. 공정률 90%가 넘어 건설 중단이 불가능한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2호기는 예외다. 공정 28.8%의 신고리 5·6호기 원전건설 중단은 비용 면에서만도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

한수원에 따르면 신고리 5·6호기 총건설 비용은 8조6천억원에 달하고 현재 이미 계약이 완료된 금액이 4조9천억원이라고 한다. 그중 32%인 1조6천억원이 현장에 투입됐다. 3개월 공론화 기간 중 발생할 손실액만 따져도 1천억원에 달한다. 야당의 한 국회의원은 직간접 손실 등을 합치면 매몰비용이 7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야 할 비용이다. 신고리 원전과 관련한 협력업체가 1천700군데나 달한다. 당장 현장 종사자들의 일자리도 걱정이다.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지나친 속도감으로 추진되고 있다. 오히려 정부가 조급증에 빠진 듯한 인상을 준다. 졸속이란 비판이 자주 나오는 것도 이런 데 이유가 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의 일시 중단 결정 과정도 납득이 안 된다. 토론이나 논의는 묵살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군사작전 하듯이 진행됐다. 그래서 정부의 공론화 과정도 요식적 절차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비전문가들에게 공론화 결정을 맡기는 것도 미덥지가 않다. 3개월의 공론화 기간도 어이없다. 우리보다 일찍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독일은 지난 2011년 원전 폐쇄 선언을 할 때까지 25년간 논의를 진행해 왔다고 한다. 오히려 지금 세계는 원자력을 클린 에너지로 보고 원전을 세우고 있는 경향이다. 국가의 에너지 정책은 중·장기적 전략 등을 고려해 결정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적 합의가 먼저 도출되는 것이 순서다. 신중해야 하고 시간이 걸려야 할 문제다. 국가정책에 대한 신뢰성과 일관성을 위해서라도 사회적 합의는 중요하다. 국민의 세금인 막대한 예산의 낭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 문제는 정치권에서라도 진지한 논의과정을 거쳐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이 없으면 정책의 정당성도 잃기 쉽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수원의 노조의 주장처럼 `국가 중대정책이 날치기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찬성구도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