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발행할 예정이던 기념우표가 무산됐다. 우정사업본부(우본)는 12일 우표발행심의위원회(심의위)를 열고 오는 9월로 예정됐던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 계획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우본이 한번 결정한 기념우표 발행 계획을 취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거니와, 전임 정권의 결정을 고의로 뒤집는 처사로 비쳐져 통합정신에 반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학계와 문화계 인사, 우표수집 전문가 등이 참여한 심의위는 이날 서울 중앙우체국에서 회의를 갖고 찬반투표를 통해 이같이 결정했다. 회의에는 심의위원 17명 중 12명이 참여했으며, 찬반투표에서 발행 반대 8명, 찬성 3명, 기권 1명으로 발행 취소가 결정됐다고 우본은 밝혔다. 지난해 기념우표 발행 결정을 앞두고는 전체 위원 중 9명이 참석해 만장일치로 발행 결정을 내렸었다. 17명 심의위원들은 작년과 올해 동일하다.

박 전 대통령 기념우표는 작년 4월 경북 구미시가 `2017년도 기념우표 발행사업` 공고를 보고 신청했고, 우본은 작년 5월 심의위를 열어 발행을 결정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11월 14일)을 두 달 앞두고 9월 중에 발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우본은 지난달 말 심의위를 열고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우표 발행을 재심의하기로 갑자기 결정한 뒤, 이날 발행 취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계획 취소 결정을 강력 비난하며 계획대로 우표를 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정권이 바뀐 지 백일도 채 안 돼서 전임 정부가 결정한 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이 백지화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13일 오전 우본의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 취소 결정과 관련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인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주 원내대표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공과는 국민들의 의견이 상반되고, 여러 의견이 있지만 대체적인 의견은 산업화에 충분히 공헌했다는 것”이라며 “박정희 탄신 기념우표 발행은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 여당 의원과 시민단체들이 발행 취소를 주장해왔던 만큼 이번 취소 결정이 정권과 코드 맞추기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국가·역사 발전에 공로가 있다면 기념하는 관례를 우리 사회도 이제 받아들일 때가 됐다는 지적이다. 같은 심의위원들이 한번 결정한 기념우표 발행을 재론하고 뒤집은 것 자체가 천박하고 옹졸한 일이자 통합의 정신에 어긋난다. 권력 앞에서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누운` 격인 우본의 행태가 우스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