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기 신부·천주교 대구대교구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 상병 시인의 `귀천`이란 시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삶을 이렇게 노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신앙선조들은 모진 박해와 고통,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리면서까지도 소풍가듯 기쁘게 노래하며 하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최경환 프란치스코. 최양업 신부님의 부친이 십니다. 그분은 안양 수리산 자락에 삶의 기반을 잡으시고 교우촌을 건설하셨습니다. 모범적인 신앙생활로 인해 곧 마을 사람들의 영적 지도자가 되셨습니다. 평소 순교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불타오르던 그분은 언제든지 순교의 때가 다가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셨습니다. 다른 교우들에게도 자상하게 `순교 교육`을 시키며, 함께 순교의 길을 걸어가길 바라셨습니다.

마침내 올 것이 왔습니다. 한밤중에 포졸들이 닥친 것입니다. 결박을 당하면서도, 심한 구타를 당하면서도 그분께서는 태연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잘들 오셨습니다. 이 먼 곳까지 오시느라 얼마나 수고들이 많으셨습니까? 저희는 오래전부터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선 조금 쉬십시오. 곧 식사를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요기하시는 동안 저희는 떠날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분께서는 교우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한 다음에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다 함께 기쁜 얼굴로 순교의 길을 떠납시다.” 해 뜰 무렵, 그분은 포졸들을 깨워 정성껏 아침식사를 대접하시고, 남루한 옷을 입은 포졸들에게는 잘 다려진 새 옷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최경환 프란치스코 회장님과

40여 명이나 되는 교우들은 마치 잔칫집에 가듯이, 단체 소풍이라도 가듯이 그렇게 순교의 길을 떠나셨습니다. 관헌으로 끌려가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사이비 교도들`, `천주학쟁이`라고 욕하며 돌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징그러운 동물이라도 바라보듯이 그들을 쳐다봤습니다. 그러나 교우들은 함께 기도하며 성가를 부르고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그렇게 갈바리아산을 향해 올라가셨습니다.

그들이 참혹한 죽음 앞에서도 그리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눈앞에 뵙는 듯이 살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직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천국을 일찌감치 맛보며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죽음으로 가는 길이 끝이 아니라 하늘로 가는 영원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길이 힘들고 험할지라도 주님 함께 계시면 이 또한 기쁘고 영광스럽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신앙의 선조들처럼 손에 손잡고 서로 격려하며 다함께 하늘 길로 힘차게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