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상대방의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이 정치를 주도할 경우 정쟁은 극단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이 경우 상대방이 집권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게 되고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정치의 모든 타협이 거부되고 죽이지 않으면 죽는 제로섬 게임으로 변질되면서 정치 자체가 소모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의 동아시아 지역은 열강의 침략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형성된 어떠한 사상이나 운동도 근대적 의미의 민족주의적 과제를 두 가지 측면에서 안고 있었다. 그 첫 번째는 당시 조선이 처해 있던 국제정치적 환경은 제국주의 중 특히 후발적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으로부터 받는 외압을 물리치고 국가의 독립을 수호해야 할 대외적 과제를 뜻하며, 다른 하나는 대외적으로 국가의 독립을 보위하기 위해서는 내적으로 전근대적 중앙집권체제에 수반되는 하향식 국민적 통합을 지양하고, 근대적 의미의 국민 참여적인 통합을 도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올해는 경술국치 107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조선조는 19세기 중엽부터 서구제국주의 또는 그 아류인 일본의 무력도전 앞에서 좌절하다가 결국 1910년 8월 29일 국권상실의 비극을 맞게 된 것이다. 이러한 좌절과 패망이 주는 역사적 교훈과 의미를 우리는 냉철하게 분석하고 정리해서 자손들에게 물려줘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민족공동체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국가운영의 기틀을 다져나가야 한다. 이러한 이중적 과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수행하느냐 하는 신념과 방향의 차이에 따라 이 시기의 정치사적 현장에 위정척사나 개화, 그리고 동학의 사상과 운동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과 운동들은 외부로부터의 침략에 대응해 국권을 수호하고 자주독립을 지키겠다는 궁극적 목표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 목표를 실현할 방법과 정치체제의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상황을 초래함으로써 통합적인 근대적 민족주의로 발전되지 못하고 결국 국권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영국의 한 역사학자는 `뚜르-뽀아띠에 전쟁에서 사라센 군대가 기독교 연합군에게 승리했더라면 오늘날 옥스퍼드대학이나 파리대학에서는 바이블 대신에 코란을 강의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파한 기억이 생각난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의 사건이나 한 지도자의 선택이 계기가 되어 그 진행방향이 결정되고 바뀐다. 한 개인의 운명이나 한 국가의 흥망성쇠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19세기 후반 조선이 개화, 척사, 동학의 사상과 운동 중에서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우세하여 한국 근현대정치사의 주역이 됐더라면 우리의 근현대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 세 갈래의 사상과 운동이 서로 갈등하며 대립하는 양상에서 벗어나 근대적 민족주의의 사상과 운동으로 융합되어 통합의 길을 선택하였더라면 그 또한 한국근현대사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오늘의 정치는 자칭 진보와 보수로 대변되는 정당들이 선거를 통해 권력의 위치가 바뀌면서 지향하는 국가정책이나 방향이 서로 다를 수는 있으나, `부국강병`이라는 국가존재의 불변의 법칙을 바꿀 수는 없다.

독립기념관 뒤뜰에 세워진 서재필 선생의 어록비다. `합하면 조선이 살테고 만일 나뉘면 조선이 없어질 것이오. 조선이 없으면 남방 사람도 없어지는 것이고 북방사람도 없어지는 것이니, 근일 죽을 일을 할 묘리가 있겠습니까. 살 도리들을 하시오.` 영욕에 눈멀어 `내로남불`이라는 남 탓하는 신생어까지 만들며 아귀다툼하는 지금의 위정자들이 가슴에 새겨야할 교훈이다.